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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현대 영화
인사전

김성민

다른 표기 언어 Kim Seong-min , 金聖珉 동의어 김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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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5년 평안남도 평양
사망 1969년
본명 김만익
데뷔 1948년 <사랑의 교실>

요약 김성민은 191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평양 제2중학교를 거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잠깐 영화 현장에 종사를 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만포산 역무원으로 근무를 하였다. 김성민은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가로 주목을 받았다. 1936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사에서 발행한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ー毎日)》가 주관한 대중문예소설 현상모집에『반도의 예술가들』(1936)이 당선되면서 유명세를 탔다.해방이 된 후 김성민은 영화계로 눈을 돌려 영화제작에 몰두를 하게 되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사랑의 교실>(1948)로 시골마을에 풍경화를 그리러 온 한 화가와 그 마을의 여인이 삐뚤어지기 쉬운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교실을 연다는 내용의 계몽영화였다. 김성민은 <어디로 갈까>(1958), <형제>(1958), <지상에서 맺지못할 사랑>(1960), <격정가>(1961), <검은 장갑>(1963) 등을 연출하면서 1960년대 초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김성민은 1950년대 초창기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생애와 이력

김성민 Kim Seong-min 金聖珉 (1915~1969)


한국의 영화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 본명은 김만익. 김성민은 191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평양 제2중학교를 거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잠깐 영화 현장에 종사를 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만포산 역무원으로 근무를 하였다.
김성민은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가로 주목을 받았다. 1936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사에서 발행한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ー毎日)》가 주관한 대중문예소설 현상모집에『반도의 예술가들』(1936)이 당선되면서 유명세를 탔다.『반도의 예술가들』은 일본어로 집필되었다. 이 소설은 후일 이병일 감독에 의해 <반도의 봄>(1941)으로 영화화되었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세련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세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작자와 신인 여배우간의 사랑(일제강점기 시절 치열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혼과 정신)을 다루고 있는데, 김성민이 과거 영화계에 종사했던 이력을 좇아 완성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일본으로 선진기술을 배우러 떠난다는 결말로 인해 일제의 선진문명에 대한 순응적 태도가 보이는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37년에는 잡지 《삼천리》에 소설 『봄 소낙비』(1937)를 발표했다. 그리고 다수의 수필과 평론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녹기연맹(綠旗聯盟)』, 『천상 이야기(天上物語)』, 『혜련 이야기(惠蓮物語)』등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들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문화/예술 부문에 포함되었다.

작품 세계

해방이 된 후 김성민은 영화계로 눈을 돌려 영화제작에 몰두를 하게 되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사랑의 교실>(1948)로 시골마을에 풍경화를 그리러 온 한 화가와 그 마을의 여인이 삐뚤어지기 쉬운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교실을 연다는 내용의 계몽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감독과 제작, 시나리오를 맡으면서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이후 <심판자>(1949), <애원의 향토>(1954) 등 멜로드라마를 만들면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특히 당대 현실에 대한 남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파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닌 한국적 정서에 걸맞는 소재를 사용하여 진취적이고 내용으로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1954년 작품인 <북위41도>(1954)는 그가 주력했던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전쟁 액션영화였다. 북한교 장교가 남한 군인들의 인간미에 감동해서 북한군의 요새를 알려주고 그를 격파하게 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김성민의 또 대표작으로 알려진 1955년 작품인 <망나니 비사(悲史)>(1955)는 실제부부인 전택이와 노경희가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고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진사의 딸 채와 작부 달, 망나니 먹과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로 남의 목을 치던 사형집행관인 자신이 단두대에서 목을 잘리게 된다는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으나, ‘<막난이 비사>는 인간을 어떤 극한에 붙들어 거기에 발로하고 섬광하는 인간상을 그리려했으나 감독의 역량이 미흡했다. 그러나 본격영화를 지향한 역작임이 틀림없다. 전택이는 과부족하지 않은 초연을 보여주었고, 노경희는 표현역이 충분했고, 신인 이경희는 청순한 연기가 인상에 남았다.’라는 평가도 들었다. (『동아』, 1955.12.27) 억척스럽고 강인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노경희는 이 작품으로 제1회 금룡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인생역마차>(1956)는 신문기자를 사랑하는 주증녀의 순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신문기자를 사랑하게 된 암흑가의 보스가 그녀의 눈을 멀게 하고, 그로 인해 주증녀가 보스를 살해한다는 설정 때문에 불필요하게 악에 대해 응징을 하고, 신문기자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모독한 것이라고 해서 상영허가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 1956.9.12) 그래서 일부 지적된 장면을 자진 삭제해서 상영을 하였다.
<처와 애인>(1957)은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 이후 기혼자의 애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영화였다. 이북에 처자를 두고 1·4후퇴 때 월남 한 남자가 남한에서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북에서 처자가 남편을 찾아오게 되면서 남자는 본처에게 돌아간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줄거리 때문에 <처와 애인>은 당시 월남한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김동리의 소설 ‘실존무’의 내용과 흡사하여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제기가 되었는데, 제작사측에서는 실존인물인 김동진을 모델로 삼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강숙희와 이택균은 <처와 애인>을 계기로 결혼을 하였다.
이후 김성민은 <어디로 갈까>(1958), <형제>(1958), <지상에서 맺지못할 사랑>(1960), <격정가>(1961), <검은 장갑>(1963) 등을 연출하면서 1960년대 초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김성민은 연출가이기 이전에 소설가였던 자신의 이력을 살려 다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였다. 정창화, 김수용, 신경균, 한형모 감독 등 당대의 유명 감독의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하였고, 그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하였다. 작품으로는 <유혹의 거리>(1954), <운명의 손>(1954), <자유부인>(1956), <포화 속의 십자가>(1956), <장화홍련전>(1956), <구원의 정화>(1956), <장희빈>(1961), <손오공>(1962), <지옥문>(1962), <사랑과 죽음의 해협>(1962), <행복한 고독>(1963) 등이 있다.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했던 김성민은 1963년 <검은 장갑>(1963)과 같은 해 신경균 감독의 <행복한 고독>을 끝으로 영화계에 떠났다. 이후 타이완으로 건너간 김성민은 1969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병명은 뇌일혈이었다.

처와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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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적 평가

김성민은 1950년대 초창기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종횡무진 활동했던 그는 다수의 멜로드라마로 당시 관객들의 심신을 달래주었다. 비록 그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체제에 편승하는 소설을 지었던 이력이 있지만, 광복 후 영화계에 데뷔해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갔던 점은 재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작품 목록

<사랑의 교실> (The Class of Love (Salang-ui gyosil), 한국, 1948)
<심판자> (A Judge (Simpanja), 한국, 1949)
<애원의 향토> (Land of Love (Ae-won-ui hyangto), 한국, 1954)
<북위 41도> (41 degrees North latitude (Bug-wisasib-ildo), 한국, 1954)
<유혹의 거리> (A Street of Temptation (Uhog-ui geoli), 한국, 1954, 각본)
<운명의 손> (The Hand of Destiny (Unmyeong-ui son), 한국, 1954, 각색)
<막난이 비사> (Sad Story of a Head Cutter (Mangnanibisa), 한국, 1955)
<인생역마차> (Stagecoach of Life (Insaeng-yeogmacha), 한국, 1956)
<자유부인> (Madame Freedom), 한국, 1956, 각색)
<포화속의 십자가> (A Cross in Gunfire (Pohwasog-ui sibjaga), 한국, 1956, 각본)
<구원의 정화> (The Flower of Relief (Gu-won-ui jeonghwa), 한국, 1956, 각본)
<장화홍련전> (Jang-Hwa and Hong-Ryeon Story (JanghwaHongryeonjeon), 한국, 1956, 각본)
<처와 애인> (Wife and Mistress (Cheo-wa ae-in), 한국, 1957)
<어디로 갈까> (Where to Go (Eodilo galkka), 한국, 1958)
<형제> (The Brother (Hyeongje), 한국, 1958)
<지상에서 맺지못할 사랑>(An unrealized love (Jisang-eseo maejjimoshal salang), 한국, 1960)
<격정가> (A Song of Passion (Gyeokjeongga), 한국, 1961)
<장희빈> (Lady Jang (Janghuibin), 한국, 1961, 각색)
<지옥문> ( The Gate to Hell (Ji-okmun), 한국, 1962, 각본)
<손오공> (Son Ogong (Son Ogong), 한국, 1962, 각본)
<사랑과 죽음의 해협> (Where Love and Death Meet (Sarang-gwa Jugeum-ui Haehyeob), 한국, 1962, 각본)
<검은 장갑> (Black Gloves (Geomeun Janggab), 한국, 1963)
<행복한 고독> (Happy Solitude (Haengbokhan Godok), 한국, 1963, 각색)


*소설*

『반도의 예술가들(半島の藝術家たち)』(1936년 8월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ー毎日)》)
『봄소낙비』 (1937년 1월 잡지 《삼천리》에 발표함)
장편소설 『녹기연맹(綠旗聯盟)』 (1940년 6월)
『단풍나무의 삽화(楓の揷畵)』 (1940년 10월 일본 잡지 《문장》에 발표함)
장편소설 『천상 이야기(天上物語)』 (1941년 3월부터 10월까지 잡지 《녹기》에 연재됨)
장편소설 『혜련 이야기(惠蓮物語)』 (1941년 8월)
수필 『거절(お断り))』 (1941년 12월 잡지 《녹기》에 발표함)
수필 『새벽의 서사(夜明けの序詞)』 (1942년 7월 잡지 《녹기》에 발표함)
평론 『가장 의적이라는 것(第一義的といふこと)』 (1942년 11월 잡지 《녹기》에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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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현대 영화인사전
근현대 영화인사전 | 저자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 김이석/차민철 | cp명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전체항목 도서 소개

이 사전은 전 세계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명사전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작성되었다. 본 사전의 표제어는 1) 한국권 (북한 포함), 2) 영..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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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성민근현대 영화인사전, 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 김이석/차민철, 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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