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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현대 영화
인사전

김수형

다른 표기 언어 Kim Su-hyeong , 金秀瀅
요약 테이블
출생 1945년 26일 경기도 파주
수상 무등영화제 작품상
데뷔 1973년 <바람아 구름아>

요약 김수형은 1945년 26일,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했다. 본적은 경기도 파주군이다. 김수형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이었는데, 집에 영사기가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김수형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희극배우였던 양훈이었다. 김수형의 영화감독 데뷔작은 <바람아 구름아>(1973)였다.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여대생과 그녀에게 수혈해준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김수형은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특히 1978년 <갯마을>이 호평을 받았는데, 14만명의 관객을 기록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았다. 김수형이 연출한 영화의 대부분은 멜로드라마와 성인영화였다. 김수형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82년에 발표된 <산딸기>이다.

생애와 이력

김수형 Kim Su-hyeong 金秀瀅 (1945~ )

한국의 영화감독. 김수형은 1945년 26일,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했다. 본적은 경기도 파주군이다. 김수형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이었는데, 집에 영사기가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김수형은 어릴적부터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되었다. 그는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작품 세계

김수형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희극배우였던 양훈이었다. 양훈은 김수형의 아버지와 선후배 사이로, 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김수형이 영화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충무로에 들어간 김수형은 김수용 감독, 이성구 감독, 최하원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며 영화 연출을 배웠다. 이후 그는 자신이 조연출을 맡았던 김수용 감독의 <갯마을>을 1978년에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수형은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특히 1978년 <갯마을>이 호평을 받았는데, 14만명의 관객을 기록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79년에는 <맨발의 청춘>을 발표했다. 그의 <맨발의 청춘>은 1964년 김기덕 감독이 연출했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영화는 원작 <맨발의 청춘>(1964)에서 신성일과 엄앵란의 역할을 이덕화와 임예진이 맡으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충무로의 기대주었던 김수형의 영화라는 점에서도 <맨발의 청춘>에 쏠린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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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이 연출한 영화의 대부분은 멜로드라마와 성인영화였다. 김수형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82년에 발표된 <산딸기>이다. <산딸기>는 이효석의 소설 『분녀』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시나리오 작가 유지형이 각색했다. 1980년대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3S정책’에 맞춰 많은 성인영화들이 양산되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서 80년대 성인영화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김수형의 <산딸기>는 시대극과 결합한 성인영화, 이른바 ‘토속에로’의 대표적인 영화였다. <산딸기>가 많은 관객을 기록하면서 <산딸기6>(1993)까지 시리즈물로 제작되어 그 흥행을 지속해나갔다. 김수형은 <산딸기> 이후에도 <암사슴>(1982), <오마담의 외출>(1983),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1984), <화려한 유혹>(1985), <누가 꽃밭에 불을 지르랴>(1989) 등 많은 성인영화를 연출했다.

김수형은 영화연출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쳤다. 1980년에 그는 다양한 영화인들(김호선, 정인엽, 정지영, 홍파, 신일용, 장미희, 정윤희, 변인식, 최인호 등 32명)과 함께 ‘제3영상그룹’을 만들었다. 제3영상그룹은 동인그룹을 중심으로 낙후된 한국영화를 개혁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들은 영화작가 중심의 프로듀서 시스템 확립, 영화 검열의 필름삭제를 반강탈행위로 규정, 새로운 영화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영화사적 평가

김수형은 영화연출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쳤다. 1980년에 그는 다양한 영화인들(김호선, 정인엽, 정지영, 홍파, 신일용, 장미희, 정윤희, 변인식, 최인호 등 32명)과 함께 ‘제3영상그룹’을 만들었다. 제3영상그룹은 동인그룹을 중심으로 낙후된 한국영화를 개혁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들은 영화작가 중심의 프로듀서 시스템 확립, 영화 검열의 필름삭제를 반강탈행위로 규정, 새로운 영화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김수형은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한 영화감독이다. 김수형을 대표하는 영화장르는 성인영화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세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예영화부터 성인영화까지 매우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김수형을 수식하는 단어는 “젊은 거장”에서부터 “에로영화의 대부”까지 그의 영화만큼이나 다채롭다. 그만큼 김수형은 많은 장르에 도전해서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를 성인영화감독으로 한정짓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김수형은 1970년대 이후 한국 대중영화를 이끌어가며 다양한 장르를 모색했던 감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인기가 감소하고 여전히 검열이 엄격했던 힘겨운 영화계의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파격적인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작품 목록

<바람아 구름아> (Young ones (Balam-a guleum-a), 한국, 1973)
<이름모를 소녀> (A girl whose name is unknown(Ileummoleul sonyeo)1974)
<금욕> ( Ascetic (Geum-yog)1976)
<친구사이야> (We Are Friends. (Chingusa-i-ya), 한국, 1976)
<7인의 말괄량이> (Seven Tomboys (7in-ui malgwallyang-i), 한국, 1976)
<우리들 세계> (Our World (Ulideul-ui segye), 한국, 1977)
<남궁동자> (Little Namgung Dong-ja (Namgung Dongja), 한국, 1977)
<갯마을> (A Seashore Village (Gaesma-eul), 한국, 1978)
<순악질여사> (Vicious Woman (Sun-agjil-yeosa), 한국, 1979)
<맨발의 청춘> (The Hey Days of Youth 77 (Maenbal-ui cheongchun 77), 한국, 1979)
<최인호의 병태만세> (Choi In-Ho's Hooray for Byung- Tae (Choe Inho-ui Byeongtaemanse), 한국, 1980)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읍니다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Let Me Show You Something (Mwonga bo-yeodeuligess-eubnida), 한국, 1980)
<조용히 살고 싶다> ( Wish to Live in Peace (Jo-yonghi salgo sipda), 한국, 1980)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I Was the Halleluiah Woman (Naneun Halleluiah ajummayeotda), 한국, 1981)
<가슴깊게 화끈하게> (With Passion and Heat (Gaseumgipge hwakkeunhage), 한국, 1981)
<암사슴> (Doe (Amsaseum), 한국, 1982)
<불바람> (Fiery Wind (Bulbaram), 한국, 1982)
<산딸기> (Mountain Strawberries (Santtalgi), 한국, 1982)
<오마담의 외출> (Madam Oh's Day Out (O-madam-ui oe-chul), 한국, 1983)
<뜸부기 새벽에 날다> (A Bird Flying At Dawn (Tteumbugi saebyeog-e nalda), 한국, 1984)
<산딸기2> (Wild Strawberries 2 (Santtalgi 2), 한국, 1984)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The Stolen Apple Tastes Good (Humchin sagwaga mas-i issda), 한국, 1984)
<새댁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The Bride Started To Blow The Trumpet (Saedaek napaleul bulgi sijakhaech-da)1984)
<화려한 유혹> (Elaborate Seduction (Hwalyeohan yuhog), 한국, 1985)
<더블유(W)의 비극> (Tragedy of W (Deobeul-yu-ui bigeug), 한국, 1985)
<길고 깊은 입맞춤> (The Long and Deep Kiss (Gilgo gip-eun ibmajchum), 한국, 1985)
<작은 고추> (Little Big Man (Jakeun gochu), 한국, 1986)
<산딸기 3> (Wild Strawberries 3 (Santtalgi 3), 한국, 1987)
<여자는 바람 여자는 바람> (Woman is Wind, Woman is Wind (Yeojaneun baram,Yeojaneun baram), 한국, 1987)
<옹기골 뽕녀> (Pong-nyeo in Ongiville (Onggigol ppongyeo), 한국, 1987)
<떡> (Rice Cake (Tteuok), 한국, 1988)
<누가 꽃밭에 불을 지르랴> (Who Can Set the Flower Bed on Fire? (Nuga ggoch-bat-e buleul jireurya), 한국, 1989)
<발바리의 추억> (Memories of Bal-bari (Bal-bari-ui Chueok), 한국, 1989, 기획)
<산딸기 4> (Wild Berries 4 (Santtalgi 4), 한국, 1991)
<산딸기 5> (Wild berries 5 (Santtalgi 5), 한국, 1991)
<10대의 반항> (The Teen Rebellion (10dae-ui banhang), 한국, 1991, 기획, 제작)
<도색부인> (Madame Pink (Dosaegbu-in), 한국, 1992)
<산딸기 6> (Wild Berries 6 (Santtalgi 6), 한국,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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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영화인사전
근현대 영화인사전 | 저자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 김이석/차민철 | cp명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전체항목 도서 소개

이 사전은 전 세계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명사전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작성되었다. 본 사전의 표제어는 1) 한국권 (북한 포함), 2) 영..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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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수형근현대 영화인사전, 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 김이석/차민철, 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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