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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3년 5월 16일 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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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1982년 대종상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꼬방동네 사람들〉) |
데뷔 |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 |
요약
배창호는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배창호는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영화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감독이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질을 발휘하면서도 빈민촌의 풍경을 다루어 사회 고발적 시각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감독한 후에 미국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고, 2004~2007년에는 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생애와 이력
배창호 BAE Chang-ho 裵昶浩(1953~)
한국의 영화감독. 1953년 5월 1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서울로 이사하여, 신당동과 성수동 근처에서 살며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영화 보는 것을 즐겼으며, 영화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시절에는 연극반에서 활동하였다. 소설가 최인호는 젊은 날의 배창호를 무모한 후배로 기억하고 있다. 배창호가 충무로의 영화사를 기웃거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느닷없이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배창호의 부탁을 받은 최인호는 그를 이장호에게 소개했고, 배창호는 이 만남이 인연이 되어 이장호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배창호가 처음 조연출을 맡은 작품은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대마초 사건으로 영화계 은퇴를 강요받았던 이장호의 복귀작이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영화계에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조감독 배창호에게도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배창호가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한 〈정오의 미스터 리〉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창호는 이장호의 권유를 받아들여, 감독 입봉을 늦추고 이장호 다음 연출작 〈어둠의 자식들〉의 조감독으로 다시 참여하였고, 두 사람의 사제 관계이자 동료 관계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배창호가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이장호 기획)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으면서, 두 사람은 선의의 라이벌 관계로 발전하였다.
작품 세계
배창호는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영화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감독이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질을 발휘하면서도 빈민촌의 풍경을 다루어 사회 고발적 시각도 겸비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관람한 최인호는 자신이 이전까지 배창호를 잘못 판단했다고 인정하고, 이후 배창호의 든든한 후원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흥행의 측면과 완성도의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으며, 신인답지 않은 연출력을 발휘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배창호의 세 번째 작품인 〈적도의 꽃〉(1982)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최인호가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각본을 쓰고, 당대의 스타 장미희가 출연한 작품이었는데, 배창호에게 몇 가지 의의를 남긴 작품이기도 했다. 일단 〈꼬방동네 사람들〉에 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야기꾼 감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해갔다는 점이 그 하나이다. 두 번째는 그의 영화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최인호와의 만남이다. 최인호는 이 작품 이전까지 개인적인 학교 선배에 불과했지만, 이 작품 이후로는 배창호의 영화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공식적인 작가가 된 것이다.
세 번째는 장미희와의 작업이다. 〈적도의 꽃〉을 기점으로 하여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로 이어지는 배창호의 영화적 이력에서 장미희는 배창호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적도의 꽃〉에서 만난 장미희는 처음부터 협조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선영’ 역을 맡았는데, 촬영장에서 배창호의 연출 방식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배창호를 애먹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로 인해 이 작품은 인기몰이에 더 한층 성공하였고,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배창호의 흥행 가도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작품 〈고래사냥〉(1984)은 고래를 잡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이다. 고래를 잡겠다고 떠났던 두 명의 젊은이(병태와 민우)는 한 창녀(춘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외딴 섬인 그녀의 고향으로 데려다 주는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 이 모험을 통해 병태는 ‘고래’가 마음속 이상이자 절망한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방황과 사회에 대한 울분을 담아내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대변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주연과 음악을 맡은 김수철이 주목을 받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배창호는 그 다음 작품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마저 히트시키면서 충무로에서 그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갔다. 그는 이제 흥행 면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감독으로 평가되며,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별칭을 얻기까지 했다. 이러한 배창호 영화의 흥행 가도는 〈깊고 푸른 밤〉(1985)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배창호는 충무로에서 흥행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자신의 입지를 활용하여, 미국 올 로케이션 영화를 구상하였다.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장미희가 필요했고, 장미희를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장미희는 한국 영화계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미희는 이 영화를 통해 ‘절제와 여백’을 얻게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영화사적 평가
〈깊고 푸른 밤〉은 미국을 동경하던 한 젊은 남자(백호빈)와 그를 사랑하게 된 한 여자(제인)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파멸을 다룬 작품이었다. 백호빈(안성기 분)은 미국 시민권과 아메리칸 드림을 획득하기 위해 재미교포 제인(장미희 분)과 위장 결혼을 하지만, 제인이 차츰 백호빈을 진짜로 사랑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결혼 계약이 끝나갈 즈음 호빈이 고국의 처자를 불러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제인이 알게 되자, 제인은 호빈에게 이혼 여행을 제안한 후 그를 죽이고 스스로도 자살한다.
이 작품은 최인호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최인호가 미국 사회의 이면을 들춰 조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자 했다면, 이장호는 젊은 남녀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파멸의 풍경을 다루는데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대중들은 〈깊고 푸른 밤〉에 열광했고, 한국영화 최고 관람 기록을 갱신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술적으로 세련된 혁신을 보여주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김영진은 〈깊고 푸른 밤〉이 배창호 영화가 선보였던 카메라 기교의 절정이라고 평가하며,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선보였던 ‘360도 원형 이동 촬영’ 기교가 이 작품에서 절정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해석했다. 이 밖에도 올 로케이션이 주는 신선함과 이국적인 화면의 매력이 관객의 심리를 사로잡았다.
다음 작품인 1985년 〈고래사냥〉(2)에서 이전까지의 연출 방식을 답습했다고 자인한 배창호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작품 세계를 구상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86년에 개봉된 〈황진이〉는 배창호의 영화 세계를 나누는 분기점의 첫 번째 작품으로 꼽힌다. 배창호는 이 작품을 통해 대중의 인기가 아닌 ‘미학적 실험’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창호는 흥행 영화의 대명사였다. 〈꼬방동네 사람들〉에 묻어나는 빈부의 문제나, 〈고래사냥〉이 연상시키는 사회 비판적 요소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이장호는 철저하게 대중의 기호와 감성 그리고 취향에 초점을 맞춘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1986년 한국 영화 관객들은 배창호의 다른 모습을 발견해야 했다. 〈황진이〉는 길고 느린 편집, 롱 테이크, 미학적 미장센, 구도적 자세 그리고 영화적 깨달음의 구현을 기반으로 하였다. 이현경은 〈황진이〉가 ‘구도자로서의 황진이’를 구현한 영화라고 분석했고, 김수남은 〈황진이〉를 통해 배창호가 ‘실험정신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고 정리했으며, 영화평론가 정영일은 〈황진이〉가 ‘한국영화의 쿠데타’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변화의 폭은 컸고,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배창호 스스로 갈구했던 변화이기도 했다. 배창호는 〈황진이〉를 자신이 “바뀌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황진이〉 이후 배창호는 이야기꾼으로서의 감독이나 흥행 영화의 감독이 아닌, 형식적 모험이나 미학적 실험을 바탕으로 정신적 삶과 영혼의 문제를 응시하려는 감독으로 변모하였다.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등의 영화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배창호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찍으면서 일반 대중 관객이 좋아할만한 육체적 표현을 극도로 절제했고, 인간 사이의 감정을 질박하게 그려내는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배창호의 감독 이력에 위기를 가져왔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지만, 그 이후 배창호가 만드는 영화의 흥행 성적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꿈〉(1990)에서의 흥행 실패는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형식 미학적으로는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지만, 관객들은 배창호의 영화를 외면했고 비평계에서의 반응도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배창호는 〈황진이〉에서 〈꿈〉에 이르는 도정을 통해 전면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배창호는 1980년대 전반기에는 관객의 요구를 읽어내는 흥행 감독의 대명사였지만, 1980년 후반기에는 새로운 도전을 향한 예술가적 의지를 드러내는 감독이고자 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새로운 변신을 꾀하게 된다.
1991년 배창호는 최인호 각본의 〈천국의 계단〉을 발표하면서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과거와 딸을 숨기고 출세해야 했던 대스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배창호는 〈젊은 남자〉(1994), 〈러브 스토리〉(1996), 〈정〉(1999)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갔고, 이러한 작품 세계는 그를 독립영화세계에 접근하도록 이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또 한 번의 형식적 변신을 시도했다. 영화 〈흑수선〉(2000)을 통해 예전 흥행 감독의 지위에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변화된 한국 영화의 현장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흑수선〉은 달라진 관객의 기호와 감수성에 호소하지 못했고, 비평가들에게도 특별한 매력을 끌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이후 배창호는 자신이 직접 주연한 저예산 영화 〈길〉을 제작한 바 있다.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감독한 후에 미국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고, 2004~2007년에는 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꼬방동네 사람들〉로 대종상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고, 〈고래사냥〉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깊고 푸른 밤〉으로 대종상 감독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과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국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목록
〈바람 불어 좋은날〉(Good Windy Day(Balambul-eo joh-eun nal), 한국, 1980, 조감독)
〈어둠의 자식들〉(Children of Darkness Part 1, Young-ae the Songstress(Eodum-ui jasigdeul, je1bu KasuYeongae), 한국, 1981, 조감독)
〈철인들〉(Iron Men(Cheolindeul), 한국, 1982)
〈꼬방동네 사람들〉(People of Ko-bang Neighborhood(Kkobangdongne salamdeul), 한국, 1982)
〈적도의 꽃〉(The Flower at the Equator(Jeokdo-ui kkoch), 한국, 1983)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The Winter That Year Was Warm(Geu hae gyeo-ul-eun ttatteushaessne), 한국, 1984)
〈고래사냥〉(Whale Hunting(Goraesanyang), 한국, 1984)
〈깊고 푸른 밤〉(Deep Blue Night(Gipgo puleun bam), 한국, 1985)
〈고래사냥 2〉(Whale Hunting 2(Goraesanyang 2), 한국, 1985)
〈황진이〉(Hwang Jin-ie(Hwang Jin-I), 한국, 1986)
〈가까이 더 가까이〉(Closer, Further Closer(Gakkai deo gakkai), 한국, 1986, 기획)
〈기쁜 우리 젊은 날〉(Our Joyful Young Days(Gippeun wuri jeolmeun-nal), 한국, 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Hello God(An-nyeonghaseyo Hananim), 한국, 1987)
〈개그맨〉(Gagman(Gaegeumaen), 한국, 1988, 각본․출연)
〈꿈〉(The Dream(Kkum), 한국, 1990)
〈천국의 계단〉(Stairways of Heaven(Cheongug-ui gyedan), 한국, 1991)
〈젊은 남자〉(The Young man(Jeolm-eun namja), 한국, 1994)
〈러브스토리〉(Love Story, 한국, 1996)
〈정〉(My heart(Jeong), 한국, 1999)
〈흑수선〉(The Last Witness, 한국, 2001)
〈길〉(Road(Gil), 한국, 2004, 출연)
〈나의 사랑, 나의 영화〉(My love and My cinema(Naui salang naui yeonghwa), 한국, 2008, 다큐멘터리, 출연)
〈여행〉(The Trip(Yeohang), 한국,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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