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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의의 과학
지난 2010년 출간된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수개월 만에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지금까지 2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이 책의 원서는 2009년 출간됐는데, 한국어판이 나왔을 무렵 미국에서 4만부 정도 팔렸다고 하니 인구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구매율이 100배가 넘은 셈이다.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생각하며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드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 요인으로 청중 수천 명이 운집한 초대형 강의실에서 폼 잡고 강의하는 저자의 사진을 신문 전면광고로 실은 출판사의 과감한 마케팅을 꼽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사회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데 대한 분노의 에너지가 이 책에 대한 열광으로 전환된 것이다. 책이 출간되고 5년이 지났지만 그 사이 ‘갑질’이나 ‘열정 페이’, ‘땅콩 회항’ 같은 부당한 행위에 대한 신조어만 추가됐다.
우리는 왜 이처럼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을 갖게 됐을까. 그리고 정당함을 판단할 때 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책에 나온 두 가지 에피소드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들여다보자.
감정에 휘둘리는 정의로운 뇌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가 선로를 보수하는 인부 다섯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철로를 변경하는 스위치를 누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선로에도 한 사람이 있다. 당신은 스위치를 눌러야할까. 문제를 조금 바꿔서 이번에는 철로 위 다리 난간에 기대있는 덩치 큰 사람을 밀면 인부들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야할까.
우리는 사안의 정당함 여부를 판단할 때 전적으로 ‘이성(理性)’에 의지할까. 이런 물음에 답을 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예가 이 책에도 나오는 ‘전차 문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에 따르면 두 경우 모두 도덕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결과다. 단지 차이는 스위치를 누르느냐 몸을 미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스위치 문제에서는 사람들 대다수가 스위치를 누르겠다고 답한다. 다섯 명 대신 한 명이 희생하는 건 그 사람에겐 안 됐지만 정당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을 밀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 대다수가 밀지 않겠다고 답했다. 5명을 살리자고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정의 또는 도덕에 대한 판단은 이성의 영역이라는 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은 이런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2001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연구자들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법(fMRI)을 써서 사람들이 이런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할 순간에 감정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도 함께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내측전두이랑, 뒤쪽 띠이랑, 모이랑이 활성화 됐는데 이곳은 슬픔이나 두려움 등 감정의 동요에 관여하는 부분이다. 즉 스위치를 누를지 말지 선택해야 할 때보다 사람을 미느냐 마냐를 결정해야 할 때 위의 영역들이 훨씬 강하게 활성화됐다.
즉 두 상황 모두 결과(한 명을 희생해 다섯 명을 살리는)를 놓고 보면 마찬가지라는 ‘합리적인 이성’에 비해 스위치를 누를 때 느끼는 감정 동요는 미약하지만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내 손으로 직접 밀어야 할 때 느끼는 감정 동요는 이성을 압도한다는 것. 연구자들은 “오랜 합리주의 전통은 도덕 판단에 이성의 역할을 강조해왔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이성과 함께 감정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2007년 미국 아이오와대 마이클 쾨니그스 교수팀은 위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인 복내측전전두피질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전차 딜레마를 낼 경우 스위치 문제에서는 정상인과 비슷했지만 사람을 미는 문제에서는 “밀겠다”는 대답이 두 배 더 높았다. 즉 감정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 도덕적 판단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사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변기가 샜다. 수리공은 할머니가 어수룩해 보이자 수리비로 5만 달러를 불렀다. 계약금 2만 5000달러를 지불하려고 은행을 찾은 할머니에게 은행원이 자초지종을 물었고 사실이 들통이나 수리공은 사기죄로 체포됐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다들 노인을 농락한 뻔뻔한 수리공을 비난하기 마련이다. 돈 문제에 관련된 이런 심리를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최후통첩게임’이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A)에게 10만원을 주며 어떻게 분배할지를 결정하라고 한다. 다른 사람(B)에게는 그 비율을 받아들일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 만일 그가 받아들이면 그 비율대로 나누고 거부하면 둘 다 못 받는다.
기존의 경제이론에 따르면 B는 1만원을 받아도 받아들여야 한다. 한 푼도 못 받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제시 비율이 25% 미만일 경우 대부분이 거절한다고 한다. 설사 내가 한 푼도 못 받더라도 상대방의 부당한 이득을 응징하겠다는 뜻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 지역과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40%를 나눠주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렇다면 ‘독재자 게임’은 어떨까. 이 경우 A가 분배비율을 결정하면 그대로 시행된다. 따라서 A가 한 푼도 안 줘도 된다. 그럼에도 A는 최후통첩게임 때보다는 적지만 B에게 일부를 떼어준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의 카를라 호프 박사는 “돈을 나누려는 동기는 그런 행동을 기대하는 사회의 규범을 어기지 않으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변형된 독재자 게임을 통해 이런 설명을 지지한 연구결과가 있다. 즉 0~5달러 사이를 주는 원래 독재자 게임에서는 71%가 일부를 주지만, -5~5달러 즉 상대의 5달러를 뺏을 수 있는 데까지 범위를 넓혀주면 돈을 나눠주는 비율이 10%로 떨어진다. 옵션을 상대의 5달러를 가져올 수 있는 범위까지 넓혀주면 ‘안 뺏는 것만 해도 어딘데…’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한 푼도 안줘도 그다지 야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결과다. 이처럼 우리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은 피하려는 욕망이 있다.
‘제삼자처벌게임’은 공정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강한 욕망을 잘 보여준다. 최후통첩게임처럼 A가 주어진 돈에서 B에게 얼마나 떼어줄지 결정한다. 그런데 배분을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건 판돈의 절반을 기본으로 받는 제삼자인 C다. 만일 A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C는 A가 돈을 잃게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자신도 돈을 잃는데, C가 내놓는 돈의 3배를 A가 잃게 규칙을 정했다고 하자.
예를 들어 A가 10만원에서 1만원을 B에게 주기로 했는데 C가 수긍한다면 A는 9만원, B는 1만원, C는 5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C가 반발해 자기돈 1만원을 내놓으면 A는 6만원(9만원 - 3×1만원), B는 1만원, C는 4만원(5만원-1만원)을 갖는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1만원을 손해 보더라도 부당하게 이득을 본 사람이 3만원을 잃는다면 기꺼이 ‘처벌’에 동참한다. 경제행위에서 인간의 이타심을 연구해온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는 “인류가 공동생활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공정함에 대한 욕구는 더 강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집단 규모와 경제 시스템의 규모가 위와 같은 실험에서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조셉 헨드릭 교수팀은 2010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15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다양한 게임 실험을 실시한 결과 집단이 크고 시장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공정함과 처벌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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