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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사이언스
칼럼

메가번개의 비밀

Megalightning

위로 솟구치는 번개!

세계에서 번개가 가장 많이 치는 곳은 어디일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95~2013년에 작성한 ‘번개 지도’에 따르면, 1년에 300번의 번개가 친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 호수다. 번개 지도는 1km2의 넓이에 번개 친 횟수를 집계해 만들었다. 사실 지구 전체에는 눈 깜박할 사이에, 6개월간 한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만한 에너지를 내뿜는 번개가 하루에 14억 번이나 친다.

메가번개

ⓒ GIB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반 번개보다 규모가 1000배나 더 큰 번개가 있다. 바로 ‘메가번개(Megalightning)’다. 메가번개는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번개다. ‘번개는 구름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교과서의 지식을 뒤집기 때문이다. 메가번개는 구름 위에서 발생하고 고도 90km까지 치고 올라간다.

메가번개에 대한 목격담은 100년 전부터 전해져 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비행기 조종사들은 구름 위에서 춤추는 빨간 불덩이, 분수처럼 솟는 파란 불기둥 같은 낯선 불빛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오랫동안 조종사가 헛것을 본 것이라며 목격담을 믿지 않았지만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메가번개는 조종사의 경계대상 1호가 됐다. 메가번개는 여객기가 견딜 수 있는 설계 한계보다 6배나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로 남겨진 많은 공중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메가번개일 가능성이 높다.

양배추, 문어 닮은 ‘요정’ 스프라이트

메가번개는 고도 15km의 구름 위쪽에서 발생한다. 종류로는 스프라이트, 블루 제트, 자이언트 제트, 엘브스가 있다.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스프라이트다.

1989년 7월 6일 밤 미국 미네소타평원에서 미네소타대 로버트 프란츠 박사가 어두운 곳에서 찍을 수 있는 TV카메라를 시험하다가 우연히 250km 떨어져 있는 뇌운(번개, 천둥을 동반하는 구름) 위의 하늘을 찍었다. 나중에 촬영테이프를 보다가 구름 위에서 예상치 못한 눈부신 불빛을 발견했다. 이것이 메가번개의 일종인 ‘스프라이트’였다. ‘스프라이트(sprite)’는 영어로 요정이란 뜻이다.

사진에 찍힌 스프라이트

ⓒ Global Hydrology and Climate Center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프란츠 박사팀은 이를 분석해 이듬해 7월 6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뇌운으로부터 ‘솟아오른 번개 섬광’, 즉 고도 14km의 구름 정상에서 위로 20km 이상 솟아오른 쌍둥이 빛기둥을 기록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로 거대한 방전현상은 높이 나는 비행기와 로켓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경고였다.

이후 메가번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1989~1991년에 고도 200km 이상을 나는 우주왕복선에서 지구 상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서 스프라이트 현상을 17개나 찾아냈다. 미국 대평원에 거대한 폭풍이 피어오른 밤이면 과학자들은 로키산맥 위에서 폭풍 위쪽 하늘을 고감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1992년 이래 10년 동안 거의 1만 개의 스프라이트를 관측했다. 1994년에는 알래스카대 과학자들이 고감도 컬러카메라를 갖고 비행기에 올라탄 뒤 공중에서 스프라이트 사진을 찍었다. 스프라이트의 실제 빛깔이 빨갛다는 점도 이때 처음 확인했다.

노란 빛을 내는 스프라이트

ⓒ NASA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격적인 분석이 시작되자 스프라이트가 위로 치는 번개라고 생각했던 점은 오해임이 밝혀졌다. 스프라이트는 보통 10~100ms(밀리초, 1ms=1000분의 1초)가량 지속되는데, 눈 깜박할 사이(250ms)보다 더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1초에 60장만 찍을 수 있는 초창기 TV카메라로는 스프라이트의 변화과정을 알아내기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고속카메라의 영상을 바탕으로 스프라이트가 실제로는 아래로 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커다란 스프라이트는 전리층 하부인 고도 90km에서 고도 15km 근처의 뇌운 정상까지 최대 초속 1만km로 내리치기도 한다. 수평 방향으로는 40km 이상 뻗쳐 있다. 가장 밝은 영역은 고도 65~75km에 위치하며 그 아래로는 지름 100m 이하에 덩굴손이나 촉수처럼 생긴 구조가 여럿 늘어져 있다. 전체 모습은 양배추나 당근, 또는 문어나 대형 해파리를 닮았다.

흥미롭게도 스프라이트는 뇌운에서 지상 번개가 칠 때 함께 발생한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일부 번개는 지상에 있던 전자가 뇌운 상층으로 치솟아 양전하와 만나면서 생기는데, 이때 고층에 붉은 스프라이트가 나타난다. 전리층에 있던 양전하가 내려오면서 대기 중 산소와 충돌하면 흥분한 산소에서 붉은빛을 내놓기 때문이다.

위로 솟구치는 번개, 블루 제트

스프라이트는 고도 90km 근처의 대기 상층에서 아래로 치는 메가번개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위로 치는 번개는 없을까. 1989년 10월 21일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가 호주 상공을 지나가면서 거대한 폭풍을 찍은 비디오에서 ‘로켓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번개’가 발견됐다. 이것은 스프라이트와 달리 파란빛을 띠어 ‘블루 제트(blue jet)’라고 한다.

위로 치는 번개 블루제트

ⓒ NASA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블루 제트는 뇌운 꼭대기(고도 15km)에서 가느다랗게 솟구치는 메가번개다. 보통 초속 100km로 전리층 바로 아래인 고도 40~50km까지 도달한다. 블루 제트는 0.1~1ms 정도 지속돼 스프라이트보다 빨리 사라지고 스프라이트와 달리 지상 번개와 연관이 없다. 블루 제트가 생기는 원인을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에서 찾는 이론도 있다.

블루 제트와 스프라이트의 잡종으로 보이는 ‘자이언트 제트’도 발견됐다. 대만 국립성공대 과학자들이 2003년 6월 ‘네이처’에 발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건물 꼭대기에 고감도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한 뒤 거기서 400km 떨어져 있는 남중국해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뇌운의 위쪽 하늘을 촬영했는데, 스프라이트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이언트 제트’ 5개가 뇌운 정상에서 나타나더니 고도 90km까지 솟아올랐다. 연구진의 영상에서 하층부는 블루 제트, 상층부는 붉은 스프라이트라고 추정됐다.

다른 종류도 있다. 고도 100km에서 수평으로 나타나는 메가번개 ‘엘브스(ELVES)’다. 1990년 10월 7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가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상공을 지나갈 때 TV카메라로 대서양해안 북서쪽에 있는 거대한 폭풍을 촬영했는데, 이 비디오에서 ‘대기광 속의 섬광’을 찾아냈다. 이런 엘브스는 지름 400km의 도넛 모양으로 붉게 빛난다.

메가번개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국내 연구진도 있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박일흥 교수팀은 차세대 우주망원경 ‘MTEL-2’를 개발해 메가번개와 우주선(cosmic ray)을 밝힐 계획이다. MTEL-2는 2014년 7월 러시아 로켓에 실려 우주로 올라갔다. 이 망원경에는 구름 위에서 무작위로 발생한 뒤 빠르게 이동하는 섬광을 포착하는 첨단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메가번개의 비밀을 밝힐 우리 연구진의 활약이 기대된다.

메가번개 개념도. 블루제트와 스프라이트의 높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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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집필자 소개

이충환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우주론 전공)를 받았고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문학 잡지 《별과 우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과학종합미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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