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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대를 산책
하다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대한민국 방송 현대화의 출발점
요약 테이블
건립시기 1957년 준공
면적 4,235㎡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26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전경

ⓒ 신동연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서울 남산 위에는 서울의 랜드마크 N서울타워가 서 있다. 맑은 날에는 이곳 전망대에서 북한의 개성이 보인다. 이곳은 화려한 서울의 야경을 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N서울타워는 1975년 TV와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종합 전파탑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KBS, MBC, SBS를 포함해 여러 케이블TV와 FM 송신 안테나가 설치되어 전국 시청자의 절반가량이 N서울타워 전파탑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남산은 방송과 인연이 깊다. KBS는 1976년 여의도 새 청사로 이사하기 전까지 남산에 있었다. 퇴계로 세종호텔 건너편으로 남산에 오르자면 대한적십자사 지나 왼편에 서울애니메이션센터(SBA)가 있다. 이 알록달록한 청색 건물이 KBS 옛 청사다.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로보카 폴리 구조대작전〉 체험 행사가 열린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활기가 넘쳤다. 로봇으로 변신이 가능한 자동차들의 구조 이야기 ‘로보카 폴리’는 2010년 2월 말부터 EBS에서 인기리에 방영한 국산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해마다 어린이날 즈음해 다른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전시, 공연 및 상영, 그리고 페이스페인팅, 캐릭터 소품 제작 등 다양한 체험 행사를 연다.

1999년 5월에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산업을 지원하고 인력 양성과 저변 확대 사업을 해왔다.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예전 KBS 공개홀)과 전시실, 도서 정보실, 영상 녹음 편집실을 갖추고 있고 사무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창작 지원실도 운영한다.

꽃이 진 자리에서 돋아난 신록이 마냥 싱그러운 봄날, 해맑은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곳은 평화가 넘쳐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 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분명 복되고 아름다울 터이다.

그러나 100년 전, 이 나라 이 터전은 그늘이 깊었다. 1906년 이곳에 일본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진을 쳤던 ‘왜성대(倭城臺)’라는 이름이 되살아났다. 한일 강제병합 후에 통감부는 총독부로 간판을 바꾸고 1926년 광화문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표석만 남아서 나라가 당한 치욕을 일깨워주고 있다. 애니메이션센터 정문 오른쪽에는 1921년 의열단 김익상(金益相, 1895~1925) 의사가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곳이라는 표석도 있다. 그런데 KBS가 있었던 곳이라는 표석은 없어서 대부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현대식 방송 시설로 남산 시대가 열렸고 서울의 새 명소가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센터 자리에는 KBS라디오(국내)와 국제방송국(대북, 대외)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 ‘산길다방’이 있었는데 아마 1960,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다방일 겁니다. 방송국 직원들은 물론 연예인이나 작곡가, 작가 들이 꽉 들어찼으니까요. 밤에는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즐겨 찾았고요. ‘계란반숙’과 ‘위티’가 인기메뉴였는데 위티는 홍차에 위스키를 두어 방울 떨어뜨린 것이지요. 그 명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유감입니다.”

한국일보 출신 연예 기자 1호 정홍택 단국대 초빙교수는 당시 방송국 사람들과 연예인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생생히 풀어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방송가에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넘쳐난다. 특히 유명 가수나 배우, 탤런트에 얽힌 비화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첫 방송 송출을 기념하는 ‘첫 방송 터’ 앞에 선 정홍택 교수

ⓒ 신동연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리라초등학교와 숭의여자대학교 언덕배기에서 옛 방송국 자리를 보며 한국방송 80여 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방송(Broadcast)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해군에서 각 함정 앞으로 동일한 전보를 개별적으로 불러내지 않고 한꺼번에 전송하는 것을 일컬었다. 라디오 방송은 미국이 1920년에 처음 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일본은 1925년에 방송국을 개국했다.

라디오는 무선 과학의 아버지 영국의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그 이름을 주파수의 단위로 삼은 독일의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 고주파 유도 코일(고주파 고전압의 진동 전류를 얻는 데 쓰이는 장치)을 발명한 세르비아계 미국인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 안테나를 발명한 러시아의 포포프(Aleksandr Stepanovich Popov, 1859~1906)의 업적을 총체적으로 결합해 만든 작품이다.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정동 1번지에서 경성방송국(JODK) 정규방송 첫 전파가 발사되었다. 당시 라디오 수신기는 부의 상징이었다. 전국에 5,000대 정도가 등록돼 있었고 대부분 일본인들이 소유했다. 조선인이 소유한 수신기는 1,000대가 채 되지 않았다. 확성기 달린 라디오 가격이 50원이나 했는데 기업 근무자의 평균 월급이 30원이었으므로 여간해서는 장만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매달 전지와 소모비 2원, 청취료 2원이 별도로 추가되었다. 청취료가 너무 비싸다는 원성에 얼마 있다 1원으로 내리지만 1원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 돈을 내지 않으려고 도둑처럼 몰래 듣는 사례가 많았다. 1928년 1월, 경성방송국은 전략적으로 라디오 도청자 1명을 관계 기관에 고발하고 이것이 신문에 보도되자 그다음 날, 하루 평균 20건 정도였던 계약자 수가 무려 50건에 이르렀다.

삼한사온의 그 사온,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귀돌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들의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육십팔 원짜리 ‘콘써톤’으로 ‘쩨 오 띠 케(JODK)’의 주간 방송, 고담이라든가 그러한 것을 흥미 깊게 듣고 있는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 그 물건이었다.(박태원, 『천변풍경』, 1936~1937)

당시 소설에 반영된 1930년대 경성 한약국집의 풍경이다. 이때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이중방송을 해서 해마다 1만 대 가량씩 라디오가 늘어가던 때였다. 일본어 방송을 제1방송, 한국어 방송을 제2방송으로 불렀다. 이중방송이 실시된 1933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성방송은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한국어 강좌 시간은 물론 국악과 동화, 역사 이야기까지 있어서 방송이 한민족의 얼과 긍지를 일깨웠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사상 단속이 강화되고 한국어 방송에도 가혹한 제약이 가해졌다. 그해 말 수신기 보급 대수는 27만 1,994대나 되었다.

전세가 불리해져가던 일제는 전쟁에 총력을 결집하기 위해 정보를 차단한다. 일제 총독부는 방송 전파 관제를 실시하고 일반 청취자들의 단파 수신기와 외국인 신부나 목사 들이 가지고 있던 고급 수신기를 압수한다. 해외 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단파는 음질이 고른 중파에 비해 음질이 나쁘지만 파장이 멀리까지 간다. 단파 수신기는 해외에서 날아온 전파도 잡을 수 있었다.

1942년 12월 세밑, 단파 수신 사건이 터진다. 경성방송국 한국인 기술자들이 단파 수신기를 조립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중경 임시정부에서 보내는 우리말 방송을 몰래 듣는다.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의 육성으로 ‘고국 동포에게 고함’을 듣고 일본은 패전국이 될 것이며 조선은 해방된다는 내용을 암암리에 퍼뜨렸다. 이 사건으로 300여 명이 경찰에 붙잡혔고 7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퇴직 방송인들의 친목 모임인 방우회 회원들은 1991년, 여의도 KBS 안에 항일 단파방송 연락 운동을 기념하는 물망비(勿忘碑)를 세우고 이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모인다. 그들은 우리나라 방송의 발상지인 정동 경성방송국 자리(덕수초교 교정)에 첫 방송 터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민족 지도자들 가운데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가 되었던 변절자들이 많다. 그들은 “일본이 패망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변명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항일 단파 방송 연락 사건은 지식층 사회에 일본 패망설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도쿄방송국(JOAK)을 통해 일왕의 항복 담화가 방송되었다. 경성방송국은 이것을 동시 중계했다. 12시 정각에 “기립!”이라는 외침과 함께 모두가 일어서서 일왕의 방송을 들었다. 일본인 직원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 같았고 여자 아나운서는 훌쩍거렸다. 하지만 일본군이 지키던 방송국에서 제1방송은 여전히 일본어 방송이 차지했다. 8월 20일 평양에 소련군이 진주했다. 그들은 24일 한반도 내 전국 방송국을 연결하고 있던 방송 전용 노선을 38선에서 절단했다. 이때부터 이북 방송국들은 경성방송국이 편성한 방송을 중계할 수 없게 되었다. 인천에 상륙한 미군이 9월 9일 경성방송국에 도착하고 그때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철수했다. 오후 5시, 시보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일본어 뉴스 대신 우리말 뉴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국어 방송이 제1방송 지위를 찾은 것이다.

경성방송국은 KBS 중앙방송국으로 바뀌어 한국전쟁으로 폭파될 때까지 정동에 있었다. 부산 전시 방송 시절을 거쳐 정동으로 다시 돌아와 임시 방송 시설로 급조해 쓰다가 1957년 12월 10일 남산 시대를 연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4시 5분, 남산 KBS 직원들 앞에 군인들이 총을 쏘며 들이닥쳤다. 직원들은 담 넘어 도주하거나 책상 밑에 숨었다. “안심하라. 우리는 혁명군이다.” 무장 군인들은 급박하게 아나운서를 찾았다. 박종세 아나운서가 불려나왔다. 한 장군이 다가와 협조를 요구했다. 박정희 소장이었다. 5시 정각에 혁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전문에 이어 혁명 공약이 낭독되었다.

“높은 담에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이 자리는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 지원 기관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자리 잡으면서 열린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의 중심 남산, 유행의 중심 명동과 가까운 지리적 장점도 있지요. 우리 문화 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육성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는데 머잖아 결실을 맺게 될 겁니다.” 방중혁 서울애니메이션센터장은 학창 시절 이곳이 방송국일 때, 퀴즈 대회에 나갔었다며 낡은 건물에 정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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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애니메이션센터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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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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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애니메이션센터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26
준공 : 1957년
규모 : 지상 4층
총면적 : 4,235㎡

한국의 방송 역사
1927년 : 라디오 방송 개시(KBS 전신 JODK)
1947년 : 국제전기통신 연합(ITU)에서 한국에 호출부호 ‘‘HL’ 할당
1947년 : 국영 서울중앙 방송국 출범
1957년 : 남산 방송국 신청사 준공
1961년 : 서울 국제방송국, 서울 텔레비전방송국 개국
1961년 : 문화방송(MBC) 창사(라디오 개국)
1963년 : 동양방송(TBC) 창사(한국 첫 민영TV)
1969년 : MBC 지상파 전국 TV 방송(채널 11) 개국
1973년 : 한국방송공사(KBS) 창립(공영 방송 출범)
1976년 : KBS 여의도 스튜디오 준공
1981년 : 컬러TV 전국 동시 시작
1982년 : MBC 여의도 스튜디오 준공
1990년 : 서울방송(SBS) 창사
1995년 : 인터넷 방송 개시
2001년 : 지상파 디지털TV 방송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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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록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대학원 졸업. 꼼꼼한 현장 취재와 인문학적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풍수>,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달의 제국> 등의 장편소설과 산..펼쳐보기

출처

근대를 산책하다
근대를 산책하다 | 저자김종록 | cp명다산북스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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