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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와 드라
마로 제작된
만화
정의없는 세상에서 정의를 찾다

워킹데드

Walking Dead

마블 코믹스에서 <마블 좀비스>를 기획하기도 한 작가(<워킹데드>시리즈 연재 이후의 일이다), 로버트 커크만의 좀비 아포칼립스 만화 <워킹 데드>는 국내에서는 원작만화보다 AMC가 제작한 동명의 미국 드라마가 더 유명하다. 초반 내용과 전체 설정,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뼈대와 세계관은 원작과 같은 결을 가졌지만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시즌을 거듭하며 독자적인 스토리를 구축하여 2015년 현재 시즌 5까지 방영했다. 원작 만화는 그래픽노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뉴욕타임즈> 1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 내 최고 권위의 만화상 ‘아이스너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5년 7월 현재 국내에서 15권까지 발간되었다.

워킹데드

<워킹데드>, 로버트 커크만 지음, 이미지 코믹스/황금가지 펴냄

‘워커’들의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대니 보일의 <28일 후>와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가 개봉한 이후, 좀비들은 뛰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하게 다리를 끌며 알 수 없는 신음소리와 함께 목적 없는 산책(?)을 즐기던 좀비들은 조깅 정도의 빠르기도 아닌, 인터벌 러닝 훈련 때의 엘리트 선수들처럼 달릴 수 있게 됐다. 행색이나 냄새의 끔찍함은 명불허전이지만, 스피드와 파워도 함께 얻었다. 그들은 하나자와 켄고의 좀비 만화 <아이 엠 어 히어로> 속 좀비들처럼 높이 뛰어 오르고 빠르게 목표물에 접근하며, 자신의 팔다리가 뜯겨 나갈 정도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생존자를 위협한다. 요즘 좀비의 트렌드는 그런 모양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속, 사슬로 묶어서 사육과 (저속의)노역이 가능한 친 인류적 좀비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더욱 화끈한 좀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워킹데드> 속 좀비, 이른바 ‘워커’들은 새로이 출현한 ‘스피드 앤드 파워’ 좀비가 아닌 우리가 수십 년 전부터 보아왔던 고전적인 의미의 형태에 가깝다. 그렇게 설정한 것은 어쩌면 <워킹데드>의 주역은 좀비가 아닌, 보다 내밀한 삶의 속살을 좀비 앞에서 기꺼이 드러내야 할 생존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비와 함께 하는 삶, 좀비처럼 무념무상으로 비척비척 걸었다간 순식간에 사지를 뜯어 먹히는 세상. 좀비만큼이나 인간들끼리의 관계가 생존자들의 지속적인 생존을 힘겹게 만드는 세상을 그린, <워킹데드>다.

워킹데드

<워킹데드> 영문판 표지 이미지

공무집행 중 총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된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간헐적으로 파트너와 아내가 병실을 찾은 것이 기억나고,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나의 생명유지를 위해 수액을 갈고 몸을 뒤척여 준 간호사가 있었다는 것 정도가 알고 있는 전부다. 긴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은 조용했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밖 풍경은 어수선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뭔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병원, 곳곳에 핏자국이 있고, 오로지 ‘그것’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지 않음에도.

보안관인 릭은 ‘그것’들의 출현으로 세상이 한바탕 뒤집어 진 뒤에야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다.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른 채 다만 자신을 공격하는 그것들을 물리치며 가족을 찾아 집으로 향한다. 병원을 벗어나기도 힘들었지만, 병원 밖은 인간에게 더욱 적대적이다. 그의 가족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지만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집 문을 걸어 잠그고 그것들을 피해 목숨을 연명 중인 한 부자가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것’은 그것에게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그것이 되어 재차 인간의 살점과 피를 원한다는 걸 알려줬다.

‘워커’. 그것을 명명하는 단어다. 워커는 도처에 있으며, 워커는 사람을 공격해 워커로 만들며, 워커는 이 부근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인간사회를 덮쳤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애틀랜타에서 생존자들을 보호한다는 말을 들은 릭은 자신이 근무하던 경찰서를 털어 완전 무장을 한 채 자신의 가족, 아내인 로리와 아들 칼이 있을지도 모르는 애틀랜타로 향한다. 어렵게 당도한 애틀랜타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난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곳은 어엿한 ‘워커’들의 도시였다. 각지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은 워커가 되었다. 굶어도 죽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 그들 틈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곧 꿈에 그리던 가족과도 상봉한다.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무법세계에서 드러난 인간의 민낯

워킹데드

드라마로 제작된 <워킹데드> 시즌 1 포스터

원작의 임팩트에 비해 드라마 <워킹데드>는 큰 기대 없이 1 시즌을 시작했다. 정규 시즌 편성이 아닌, 여섯 편짜리 파일럿 시즌으로 시작한 <워킹데드>는 여섯 편 안에 좀비, 아니 워커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해버린 절망감과 함께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큰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며 5시즌까지 안정적으로 방영에 성공했다. 작품에서의 좀비들은 느릿느릿 걷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자못 스피디하다. 사실 좀비가 아닌 그 어떤 재해였어도 어울렸을 법하다. 요는 전 지구적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끝까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가, 이다.

릭은 보안관이며, 책임감 있고, 균형 잡힌 사고방식을 가졌으며, 타인에게 친절하고 매사에 배려가 있다. 무장했지만 총기를 함부로 휘두르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다. 병상에서 막 일어났을 뿐이지만 아직 신체 건장한 남성인 그가 이미 오랜 피신 생활로 지친 사람들의 리더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 본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타인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을 짓밟으며 내 생명의 연장을 도모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더없이 친절하며 도덕적이었지만 ‘올바름’을 강제할 규정이나 법규가 통하지 않을 때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없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서 텅 빈 계산대에 돈을 올려두고 나오는 사람과, 그 마트 안에서 잠복해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약탈하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릭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것은 릭과 앞으로 긴긴 여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살아남아 뭉쳐있을 다른 집단 보다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들로 남을 것이라는 힌트가 된다.

인간이 무서운 땅에서 정의를 찾기

워킹데드

<워킹데드> 중 한 장면.

ⓒ Robert Kirkman, Image Comics

워커와 이 땅을 나눠 쓰기 전 평화로웠던 세계에서는 모두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누리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위기에서 살아남았지만,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살아가기로 한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하는 순서를 정하고, 세제 없이 빨래하는 방법과 잠자리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한다. 그와 동시에 워커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제압하고 어떻게 회피하는지 체득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깨닫는다. 황폐해 진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워커만큼이나, 인간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여성과 아이들을 노린 연쇄살인마, 권좌에 오래도록 앉아있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을 워커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집단의 우두머리, 집단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치정사건, 편 가르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정치, 집단의 룰을 거스르는 독단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야기하는 위기… 세계는 180도 달라졌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를 경험하고 혼란에 빠진다. 릭 또한 마찬가지다. ‘정의’라는 것의 가치가 아득하게 멀어져 버린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질서를 세우지만 그것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사람을 잃고, 자신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정의는 저만치 멀리에 있다. 생을 위한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집단을 만나고, 경계하고, 의심하고, 받아들여지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여정이 이어지는 한, 정의가 하찮아지는 순간은 계속 올 테지만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희망인 ‘정의’는 만화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거다. 희망이 필요치 않은 워커들의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건 무엇인지 <워킹데드>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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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희 집필자 소개

전 컬처매거진 <Brut> 에디터, 현재 만화 없는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에디터. 저서로 <젊은 목수들> <좀비사전>(공저) 이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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