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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목욕탕’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테르마이 로마이. 제목 그대로 작품은 고대 로마에 공중목욕탕이 있던 시절로 향한다. 꽤나 실력을 인정받았던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데다가 이제 한물갔다는 평으로 괴로워한다. 깊은 고뇌에 빠진 그는 공중목욕탕에 몸을 담그다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 물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눈을 떠 물 밖으로 나오니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한 루시우스. 혹시나 꿈을 꾸는 것인가 했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완벽히 다른 세계에 와있음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루시우스가 도착한 곳은 현대의 일본. 그 중에서도 목욕과 관련이 있는 곳들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목욕 문화에 충격을 받은 루시우스는 현대 일본인의 이름을 평안족이라 짓고 그들의 문화를 베껴 자신의 공중목욕탕 건설에 적용시킨다. 『테르마이 로마이』는 목욕과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색다른 코미디를 만들어낸 야마자키 마리의 대표작이다. 2012년과 2014년 동명의 이름으로 2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배우 아베 히로시가 고대 로마인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가 고대의 로마와 현재의 일본을 오간다는 설정이 이색적이다. 타임슬립을 통해 고대 로마인이 목욕문화를 발전시켜 간다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 <테르마이 로마이> 이야기다.
2012년 일본에서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였던 『테르마이 로마이』의 원작은 야마자키 마리가 지은 동명의 만화다. 그녀에게는 2010년 일본만화대상과 제 14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와 원작의 성공에 힘입어 2014년에는 영화의 속편이 개봉하기도 했다.
간극에서 오는 웃음
『테르마이 로마이』는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설계기사인 루시우스를 주인공으로 현대의 일본과 고대의 로마를 오간다. 문화도 언어도 시대도 전혀 다르지만 루시우스의 관심은 오로지 ‘목욕’이다. ‘목욕’이나 ‘목욕탕’이 소재나 무대가 되는 작품들은 종종 있었지만, 『테르마이 로마이』처럼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은 전무했기 때문일까. 2008년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색다르다’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은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과거 로마와 현대 일본이라는 시공간의 차이가 주는 웃음도 인기에 힘을 보탰다.
주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종일관 진지하기 때문에 엉뚱하고 때로는 정신이상자처럼 보이는 루시우스의 행동이다. 루시우스는 황제에게 임명되어 공중목욕탕을 설계할 정도로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설계기사다. 그러나 황제가 바뀔 때마다 그들의 취향에 맞춰 설계를 해야 하고 색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그들의 요구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 아이디어는 형편없고 떠오르는 생각도 없어 더욱 괴롭다. 더군다나 ‘한물갔다’라는 소문이 도는 것 같아 심기 또한 한껏 예민해져 있다. 모든 고민을 한방에 물리칠 아이디어를 골똘히 고민하면서 여느 때처럼 탕에 몸을 담근 그는 깜빡 잠이 든다. 스르륵 잠들며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그자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이끌려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해버린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고대의 로마인 루시우스는 현대의 일본으로 타임슬립 해버린 것이다.
예로부터 온천이 발달해 고유의 목욕문화가 있는 일본에 도착한 로마인 루시우스는 엄청난 혼돈에 휩싸인다. 로마가 최고라 여기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그에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고대의 기술로는 설명조차 할 수 없는 현대의 목욕문화는 충격 그 자체다. 어딘가 평온해 보이는 그들을 제멋대로 평안족(얼굴이 평평한 민족)이라 이름 붙이고 한껏 깔보지만 그럼에도 목욕에 대한 문화만큼은 무시할 수 없어서 루시우스는 매번 감탄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그가 진지한 얼굴 혹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체험하는 일본의 목욕문화는 사실 너무나 익숙하고 간단한 것들이다. 온천달걀이나 목욕 후 먹는 달콤한 드링크 음료 같은 것. 현대인들에게는 이미 당연한 것들이 루시우스에게만 신세계인터라 정신없이 먹고 만지고 체험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난다.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 된 문명의 발전
루시우스는 일본의 목욕문화를 정신없이 베낀다. 일본에서 겪은 문화들을 적용해 로마 목욕문화계에 혁신을 선보인 것이다. 다만 이것이 평안족의 기술이란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완성 된 루시우스의 목욕탕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할 만큼 근사하다. 눈여겨 볼 것은 루시우스가 내놓은 결과물이 마냥 허구가 아니란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작가 야마자키 마리는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사실 위에 그럴듯한 허구를 건설해낸다. 그녀의 조사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는 에피소드 사이마다 등장하는 로마사에 대한 설명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역사와 현재의 사실 그리고 판타지를 마구 오가며 직조해낸 이야기가 마냥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발전은 보통 누군가의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 된다. 『테르마이 로마이』 속 목욕문화가 발전하는 계기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일본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비데를 경험한 루시우스가 노예 한명이 항문을 향해 물을 부어주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상상하듯이. 실제로 어떤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던지 당시의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명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혹자는 외계인의 기술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선조들의 지혜가 더 뛰어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다 추측일 뿐 어째서 그 시대에 그렇게 발전한 기술과 문명이 있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빈 공간을 나름의 상상으로 메우며 즐겁게 유추해 볼 뿐이다. 야마자키 마리의 『테르마이 로마이』는 고도로 발전해 있었던 로마의 목욕문화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알 수 없었던 부분을 그럴듯한 웃음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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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테르마이 로마이 –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 김봉석 외, 에이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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