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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죽기전에 봐
야할 명작만
한국 오컬트판타지의 가능성

아일랜드

1999년 『영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대원씨아이에서 단행본 7권으로 완결됐다. 1993년 『소마신화전기』로 데뷔한 양경일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퇴마사 ‘반’, 재벌의 딸 ‘원미호’, 영능력자 ‘요한’이 요괴들과 대결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벤줄래’, ‘정염귀’ 등 제주도 향토 전설 속 요괴들이 등장하여 소설 『퇴마록』에 이어 한국적 오컬트물로 주목을 받았다. 만화 완결 이후 후속작으로 소설 『아일랜드』가 출간됐다. 2013년 6월에는 네이버에서 만화와 소설을 재구성한 동명의 웹소설로 재연재를 시작, 2014년 8월 완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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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윤인완&양경일, 대원씨아이, 1999년

ⓒ 대원씨아이

『공작왕』에서 시작된 ‘퇴마’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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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컬트판타지 명작 『공작왕』. 우리나라에는 해적판이 먼저 들어왔다.

80년대 후반, 오기노 마코토의 만화 『공작왕』이 해적판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공작왕』은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퇴마물로, 밀교의 퇴마사 청년 ‘공작’이 ‘팔엽대사’에 맞서 요괴들을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본은 물론 인도의 불교, 서양의 그리스도교 등 세계의 온갖 종교와 전래동화, 신화, 전설 등을 각색해 녹여 넣은 『공작왕』은 80~90년대 일본에 퇴마물 붐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나온 오컬트, 퇴마 관련 만화는 모두 『공작왕』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작왕』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한국에서도 오컬트판타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효시는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이다. 1993년 하이텔, 나우누리 등 PC통신 게시판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퇴마록』은 『공작왕』의 ‘세계관’을 한국적으로 변용해 2013년 누적 판매량 1천만 부를 넘기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99년 출간된 『아일랜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공작왕』의 세계관과 『퇴마록』의 캐릭터를 물려받은 이 작품은 초자연적 싸움이 벌어질 무대로 제주도를 주목했다. 작중 등장하는 요괴들 역시 제주도 토속 설화에서 끌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낯선 섬, 제주도의 독자성은 소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양경일의 수려하고 잔혹한 작화를 만나 『아일랜드』를 파격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덕분에 『아일랜드』는 『퇴마록』과 함께 한국 오컬트판타지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요괴와 귀신이 들끓는 섬,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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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주인공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원미호’, ‘요한’, ‘반’.

『아일랜드』는 대기업인 대한그룹 회장의 딸 ‘원미호’가 제주도에 윤리 교사로 오면서 시작된다. 제주도에 상륙하자마자 정염귀의 표적이 된 그녀를 금강저를 든 의문의 퇴마사 ‘반’이 살려준다. 피가 튀기고 떨어진 살점이 난무하는 정염귀와 반의 싸움을 지켜보던 미호는 문득 어렸을 때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온갖 귀신과 악인들이 기생”하고, “보기엔 낙원”이지만 “살인마와 요괴의 먹이 다툼”이 벌어지는 곳. “그 곳”은 바로 원미호가 발 딛고 서 있는 제주도였다. ‘처녀’라는 이유로 자신이 정염귀들의 표적이 되었음을 알게 된 그녀는 정염귀의 머리 하나당 천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반을 고용한다. 그날 이후 미호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벤줄래’, ‘병잉태’, ‘여우물 요괴’ 등 제주도 향토 요괴들에게 휘말리고, 그때마다 반을 호출해 사건을 해결한다.

『아일랜드』의 이야기는 요괴와의 물리적 충돌을 넘어 빙의와 같은 오컬트 현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여기서 또 다른 주인공 ‘요한’이 합류한다. 그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돼 사제들 사이에서 성장한 퇴마사로 반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즉 악마나 귀신 등 실체가 없는 존재와 맞선다. 티벳 밀교 주살승 출신의 반과 서양 구마술을 쓰는 요한은 서로 다른 능력 만큼이나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미호를 중심으로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양경일이 그린 제주도 요괴들의 외양은 서양식 에일리언에 가까운데,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참고할 수 있는 이미지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주석에서 요괴들에 얽힌 전설이나 뒷이야기들을 밝힌다. ‘벤줄래’ 역시 소재를 제공한 제주도민의 구술을 최대한 존중해 재구성했지만 이야기 전개를 위해 생김새나 성질을 정염귀의 일종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병잉태’나 ‘여우물 요괴’도 마찬가지로 양경일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작화력을 가진 만화가답게 요괴들을 잔혹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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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등장하는 요괴 ‘벤줄래’.

ⓒ 대원씨아이

『아일랜드』를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주제는 ‘인과율’이다. ‘모든 일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다’는 것. 작중 인물들도 이 인과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지도 않는 반의 육체에 대해서 작품이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인과율’이라는 주제로 볼 때 과거에 그를 그렇게 만든 거대한 사건의 존재를 어렴풋 짐작할 수 있다.(그의 과거는 윤인완이 낸 후속 소설 『아일랜드』와 2013년 연재해 2014년 완결된 네이버 웹소설에서 보다 상세히 묘사된다.)

인과율의 수레바퀴는 ‘또 다른 고향’편이 전개되는 작품 후반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89년 일본 도쿄 신주쿠구 도야마의 옛 육군군의학교 부지에서 대량의 인골이 발견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또 다른 고향’편은 일제 징용으로 한 맺힌 조선인의 인골들이 죄 많은 일본인들을 처단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주도로 유입된 인골들을 빼앗아 한을 풀어주려는 미호 일행과 인골을 다시 수거해 은폐하려는 일본인 영능력자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권선징악적 통쾌함에 기대 일본 측을 일방적으로 패배시키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다만 사건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나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미호를 성폭행하려 했던 일본인 형사 코지마가 갑자기 고백을 하는 등 다소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남기기도 했다.

‘END’가 아닌 ‘AND’인 아일랜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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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씨아이

단행본 7권을 마지막으로 『아일랜드』는 갑작스럽게 완결됐다. 미호의 성장과 요한의 생모, 반의 과거 등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던 시점이었다.

윤인완은 아쉬워하는 독자들의 간청과 더불어 만화에서 이야기 못한 복선들을 회수하고자 만화와 이어지는 소설 『아일랜드』를 출간했다. 2002년 총 6권으로 완결된 이 작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2013년에는 네이버에서 만화와 소설의 내용을 재구성한 동명의 웹소설이 재연재 됐다. 단순히 기존 오컬트판타지 설정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토속 소재를 발굴해 덧붙이고 훌륭히 현대화했다는 점에서 『아일랜드』는 한국 오컬트판타지의 가능성을 확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이 나온 지 15년 이상이 지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후속작을 기대하며 『아일랜드』를 그리워하고 있다. 만화 완결편 에필로그에서 윤인완과 양경일이 “『아일랜드』가 ‘END’가 아닌 ‘AND’이길 바란다”고 밝혔듯, 여전히 『아일랜드』의 세계는 누군가의 아쉬움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일랜드』 이후 그렇다 할 한국 오컬트판타지물이 없다는 점도 요한과 반, 미호를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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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집필자 소개

에이코믹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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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봐야할 명작만화
죽기전에 봐야할 명작만화 | 저자김봉석 외 | cp명에이코믹스 전체항목 도서 소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명작만화 70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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