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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커피 협정
1962년 9월 28일 미국 뉴욕. 커피 생산국과 소비국들이 모여 약속을 했다. 이름하여 국제 커피 협정의 골자는 생산 할당제 도입. 기후 변화에 따라 작황의 차이가 크고 가격도 들쭉날쭉한 커피 원두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연간 4,560만 부대(한 부대=60㎏)로 잡고 주요국에 할당량을 내려주었다. 가장 많은 쿼터를 받은 국가는 예나 제나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로 1,800만 부대가 할당되었다.
협상을 주도한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는 이듬해인 1963년 국제 커피 기구(ICO, 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까지 발족시켰다. 국제 커피 기구에 의해 국제 커피 협정은 1968년부터 2007년까지 6차례나 개정되었으나 가격과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회원국들도 국제 커피 협정의 틀 속에서 꾸준한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적어도 1989년 협정이 무력화하기 전까지는.
국제 커피 협정이 무너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대풍이 수년간 이어진 가운데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커피 경작지를 대폭 늘린데다 미국이 1989년 협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제3세계 국가들의 소련권 편입을 막기 위해 비싸게 커피 값을 쳐주던 미국이 탈퇴하며 자유 거래를 선언한 뒤부터 커피 가격과 커피 농가의 삶은 하락 일변도였다.
가장이 혼자 일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교육까지 시킬 수 있었던 커피 농가는 부부는 물론 아이들까지 학업을 접고 하루 종일 커피를 따며 하루하루 겨우 연명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라는 공정무역도 커피 농가의 실상이 알려지며 더욱 널리 퍼졌다. 최근에는 원자재와 곡물가 상승 바람을 타고 원두 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나 차익은 대부분 중간 상인과 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커피업자들에 돌아간다. 국제 커피 협정을 처음 맺었던 44년 전보다 나아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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