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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9%의 롤
모델

산업스파이 프란시스 로웰

미국 제조업의 개척자

오늘날의 매사추세츠 소재 월담 보스턴 섬유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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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에서 옷까지!"

프란시스 로웰(Francis C. Lowell)이 1814년 매사추세츠 주 월담에 세운 섬유 공장의 슬로건이다. 섬유 산업의 모든 공정을 한자리에서 처리하기는 월담(Waltham) 공장이 세계 최초다. 영국으로도 역수출되었다는 월담형 공장의 특징은 대자본 고기술. 엄청난 자본과 최신 기술이 들어갔다.

로웰은 이를 빌리거나 훔쳤다. 보스턴의 유명 가문에서 1775년 태어난 그는 35세에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 2년간 직물 공장의 기계를 남몰래 그리는 방법으로 산업 기술을 빼내 미국으로 옮겼다. 방직기 등은 불법 복제했지만 공장의 배치와 일관형 작업 공정 등은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공장을 세우는 데 필요한 돈은 친지와 함께 일반 대중에게 주식을 팔아 조달했다. 주식 사모사채의 미국판 원조 격이다.

로웰은 여직공 최초 고용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미혼의 여직공들을 채용하여 숙식을 제공하고 결혼할 때까지 일하도록 했다. 새로운 기술과 인력 구조, 거대한 자본이 결합된 로웰의 섬유 사업은 주주들에게 25.7%라는 고율배당을 할 만큼 처음부터 성적이 좋았다. 영국산 수입 면제품을 대체할 미국산 면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로웰의 성공은 사람들의 투자 의욕을 자극해 미국 각지에 220여 개의 섬유 공장이 새로 생겼다. 영국과의 제조업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공장 설립 급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로웰은 1817년 4월 10일 42세를 일기로 사업의 번창을 못 보고 사망했지만 미국 제조업의 개척자로 기억된다. 미국 최초의 역사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로웰의 공장이 있던 도시는 이제 로웰시(市)로 불린다. 그는 노동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여성 노동 운동 초기 지도자의 대부분이 로웰 공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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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집필자 소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서울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증권부 차장으로 일하며 한국기자협회 ‘이 달의 기자상’(2회)과 백상기자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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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롤모델
99%의 롤모델 | 저자권홍우 | cp명인물과사상사 전체항목 도서 소개

시간과 공간적 맥락에 따라 인간의 삶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일관적으로 목격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세계사를 수놓은 365가지의 장면과 인물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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