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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도공이여,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라

1876년(고종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 병자수호조약)으로 부산 · 원산 · 제물포 세 항구가 개방되자, 많은 일본인이 조선으로 들어왔다. 일본 상인들은 조일조약에서 보장한 무관세 특권을 이용해, 일본 상품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개화 상품’을 중계무역 형식으로 조선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리고 조선에서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쌀과 인삼을 싸게 구입해서 일본으로 보냈다. 당시 일본 무역상들에게 조선은 관세도 세금도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자, 인삼무역을 하려는 일본인들이 개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개성에서 인삼밭을 찾아다니던 일본 상인들 중 눈 밝은 사람이 우연히 고려청자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그가 일본으로 인삼을 갖고 가면서 비취색 도자기를 함께 들고 갔다. 그것을 본 일본 골동품상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려청자는 이렇게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골동품계에서는 이 시기를 1880년경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일본 골동품상들이 현해탄을 건너 개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개성 어디에서도 청자를 파는 가게나 상인을 만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청자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는 대부분 무덤 속에 부장품으로 묻혀 있었으니, 고려청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문 건 당연했다.

개성에 고려시대 임금과 왕족 그리고 무신정권 시대 실력자들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골동품상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도굴꾼을 데려왔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려청자가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도굴된 고려청자의 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좀 좋다 싶으면 기와집 한 채 값을 호가했다.

‘문화재 수호신’으로 불리는 간송 전형필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을 구입하기 위해 1935년 기와집 스무 채 값을 지불했다. 간송이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대수장가 무라카미가 두 배를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를 통해 당시 고려청자 가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청자의 존재와 아름다움이 골동품 애호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 보통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고려청자가 이렇게 인기를 끌자 고려청자 수집가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 1858~1930)는 진남포에 ‘삼화고려소’를 만들고, 1908년부터 자신이 수집한 고려청자를 모델로 재현 청자를 만들어 일본으로 보냈다. 그는 재현 청자를 만들 도공을 일본에서 데리고 왔는데, 그 당시 조선에는 청자를 만들 줄 아는 도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공들은 경기도 광주 분원리의 관요나 지방의 민요(민간인에 의해 운영되던 도자기 제작소)에서 주로 백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려청자의 존재를 몰랐고 따라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만드는지도 알지 못했다.

고려청자 제작법은 오히려 일본에서 희미하게나마 전해내려왔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예들이 ‘일본식 청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먼저 고려청자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고, 재현 청자도 일본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기술자가 일본인이고 시장도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본가들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세운 이유는, 청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우리나라에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재현 청자를 만들기 시작할 즈음, 대한제국 정부도 1907년부터 관립 공업전습소에 2년 과정의 도기과를 설치해 학생을 모집했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 도자부를 설치했고, 1908년에 설립된 이왕직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청자의 재현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기과 졸업생들과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의 관요에서 일하던 도공들이 만든 청자였다. 아직은 유약을 어떻게 배합해야 고려청자의 고유색인 비색(翡色)이 만들어지는지 몰라 색이 탁했다. 하지만 고려청자의 재현에 관심 있는 젊은 도공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고려청자 재현에 가장 열성을 보인 이는 해강(海剛) 유근형(柳根瀅, 1894~1993)이다. 그는 열여덟 살이던 1911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 취직했다. 당시 일본인 공장에서는 조선인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단순 작업만 시켰다. 그러나 유근형은 도자기를 칼로 파내 무늬를 만드는 상감 작업을 하면서도 일본인 기술자의 유약 배합을 곁눈질로 익히는 등 고려청자 재현에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청자 재현의 기초를 습득한 유근형은 일본인 공장을 나온 후 경기도 분원의 사기장 출신인 김완배를 찾아 그가 은거하고 있던 강원도 양구로 갔다. 그에게 유약 제조법의 기본을 배운 유근형은 청자 제작에 좋은 태토(胎土)를 찾기 위해 황해도 봉산 관정리와 함경북도 생기령 등에서 흙을 구웠다. 또 청자 유약의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고려시대 때 청자 가마터를 수소문해서 강진을 비롯 전국의 옛 가마터를 답사했다. 유근형은 훗날 쓴 자서전에서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회상했다.

한양고려소를 그만둔 후 다섯 번째 겨울이 지났다. 그동안 고적지며 가마자리며 흙을 찾아다녔던 일들이 온통 고려청자 하나를 위한 것이려니 생각하니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 그만치 다니며 참고자료를 수집하였으니 실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이 나를 더욱 부추기었다.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장소를 물색하던 중 수원 오목내에 두 군데 칠기공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덕수의 공장을 찾아갔다.

“그래, 당신이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오?”
“내가 이곳에 온 건 오로지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서요.”
“도자기 연구라? 대관절 무슨 도자기를 연구한다는 거요?”
“고려 때 그릇이오.”
“고려 때라? 그래, 그게 어떻게 생긴 것이오?”
“형태도 여러 가지지만 그 파리께리한 색이 참으로 아름답소. 그것이 바로 고려청자라는 거요.”
“고려청자? 난 그런 말부터 처음 듣소. 그래, 어디 고려청자를 만드는 곳이라도 있소?”
“만들긴 어디서 만들어요?”
“그러면 만드는 곳도 없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소?”
“그릇은 박물관에서 보았고, 자세한 것은 역사책에서 보고 알았소.”
“그래, 만들 만한 자신이 있소?”
“네, 있지요.”
“그걸 만든다면 하루이틀엔 안 되고 여러 날 될 텐데.”
“그러기에 5년이고 10년이고 노력을 해야죠.”
- 《고려청자, 청자도골 해강 유근형 자서전》, 도서출판 오른사

유근형은 수원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왕실도자기 가마터가 있던 여주 오금실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도 실패를 거듭했지만 유약과 태토의 비법을 어느 정도 찾아냈다. 그러고는 일본인 공장에 들어간 지 10년, 고려청자 재현 노력 5년 만에 마침내 청자 복원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시작일 뿐,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흙이 필요했다. 그는 또 흙을 찾아 이천, 수원, 강진 등 전국을 누볐다. 물론 흙만으로 비색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마의 불 온도였다. 유근형은 비색을 내는 온도를 알아내기 위해 뜨거운 가마에서 살다시피 했다.

유근형은 “그동안 깨뜨려버린 작품만도 엄청났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28년 일본 벳푸시 박람회에 운학무늬 매병, 포도무늬 주전자, 이중투각 항아리 등 세 점을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 짧지 않은 세월 각고의 노력이 비로소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유근형의 성공은 도공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후 조선미술전람회 공예 부문에 청자를 출품해서 입상하는 도공들이 나타났다. ‘청자해태향로’를 출품한 김완배(제13회), ‘청자상감화병’을 출품한 이윤규(제18회) 등이 고려청자 복원에 뜻을 둔 도공들로, 이들은 유근형과 함께 고려청자의 비색을 완성시키기 위해 매진했다.

조선시대에 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는 이렇게 근대 도공들의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복원되어,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이 다시 빛을 발했다.

일제강점기에 청자를 재현하는 도공을 찍은 사진이다. 당시 작업 환경 등을 엿볼 수 있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도공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긴 프랑스 출신 화가 폴 자쿨레(Paul Jacoulet)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어머니가 있는 서울을 오가며 우리나라 소재 작품을 판화로 만들었는데, 〈도공〉은 ‘일하는 사람’ 시리즈의 한 점이다.

〈도공〉은 근대 우리나라 도공의 청자 재현 작업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으로, 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모습과 탕건 아래 날카로운 눈빛은 청자를 복원하려는 치열한 ‘장인정신’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폴 자쿨레, 〈도공〉, 다색목판, 39.3×30.0cm, 1940년,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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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보이는 고려청자는 표주박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표주박 모양의 고려청자는 대부분 주전자다. 자쿨레의 작품에서 단순하게 표주박 모양만 그리고 주전자의 손잡이와 주둥이를 생략한 것은, 고려청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을 위해 단순명료하게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 1국보 제116호인 청자상감 모란문 표주박 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2폴 자쿨레의 목판화 〈도공〉의 도자기 부분

그런데 자쿨레 판화의 도자기에서 푸른색이 보이는 건 청자 제작 과정에 비춰볼 때 맞지 않다. 판화에서 보이는 상태는 초벌구이 전인데, 그때는 도자기에 푸른빛이 돌지 않는다. 도자기에 푸른색이 나타나는 건 유약이 착색되는 재벌구이가 끝난 후인데, 그때는 이미 색이 나왔기 때문에 판화에서처럼 안료를 칠할 필요가 없다. 자쿨레는 아마도 청자에 고유한 비색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푸른색을 표현한 것 같다.

판화에 나타난 청자의 무늬는 고려청자에서 많이 보이는 모란당초문이다. 이로써 당시 청자 제작이 고려청자의 전통적인 모양과 무늬를 충실하게 재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이 운영하는 청자 재현 공장에서는 고려청자의 모양이나 무늬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꽃병 형태에 봉황이나 작약 같은 크고 화려한 무늬를 그려 넣는 ‘일본식 청자’를 많이 만들었다. 바로 이 점이 조선 도공과 일본 도공의 다른 점이었다.

폴 자쿨레와 양녀 나성순

18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자쿨레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도쿄 외국어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다. 25세 때인 192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32세 때 어머니가 경성제대에 재직 중이던 일본인 의학박사와 재혼하면서 거처를 서울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남아 작품활동을 했는데, 어머니를 만나러 자주 서울을 오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판화로 만들었다. 그는 우리나라를 소재로 36점 이상의 다색목판화와 100점 이상의 수채화와 드로잉을 남겼다.

자쿨레는 1931년 일본에서 야간학교에 다니던 전남 영암 출신의 나영환을 조수로 맞아 작업했는데,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더욱 각별해졌다. 그래서인지 그의 한국 소재 작품에는 서민들의 삶이 많이 담겨 있다. 1934년 서울 미쓰코시 백화점(지금의 신계계백화점 자리)에서 ‘폴 자쿨레 판화전’을 개최했고, 1939년에는 조수 나영환의 동생 용환 역시 조수로 맞았으며, 1949년에는 나영환의 딸을 입양해 조수들과 한가족을 이루었다.

자쿨레는 1960년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양녀 나성순에게 물려주었고, 금속공예가로 성장한 나성순은 2005년 12월 162점의 자쿨레 전작 판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1952년 스케치를 하러 나선 자쿨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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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집필자 소개

1954년 서울 출생,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4년《실천문학》을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소설, 르포, 칼럼 등을 활발하게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그림애호가로..펼쳐보기

출처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저자이충렬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1898년부터 1958년 사이에 그려진 화가들의 작품 86점을 소개하고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장소에서 역사의 자취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다. 또한 <고종실록..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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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조선의 도공이여,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라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이충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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