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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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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량 | 450000 |
종수 | 4 |
액면가격 | 250원 |
디자인 | 동부여의 건국 |
우표번호 | 2694 |
인면 | 40mm×30mm |
천공 | 13 |
전지구성 | 2 × 4 + 4 |
용지 | 그라비어원지 |
인쇄 및 색수 | 그라비어 6도 |
우표크기 | 40mm×30mm |
디자이너 | 모지원 |
인쇄처 | 한국조폐공사 |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2008년의 단군왕검 이야기에 이어 부여의 금와왕 이야기를 소개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부여 금와왕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신하 아란불 꿈에 천제가 나타나서 “앞으로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고 하니 너는 다른 곳으로 가거라. 동해 바닷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도읍을 세울 만하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아란불은 왕에게 도읍을 그곳으로 옮기도록 권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에게는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여 아들 낳기를 바랐는데 이때 그가 타고 가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어 보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바로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이로구나!” 하고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했다. 금와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고 왕이 죽자 금와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의 왕위를 태자 대소에게 물려주었다.
북부여 왕 해부루는 서기 전 59년에 나라를 동쪽으로 옮겨 지금의 길림성 북부 부여현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부여가 동부여로서 서기 494년에 고구려에 투항함으로써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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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부여 금와왕 특별우표 – 한국우표, 우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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