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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년 7월 27일, 전라북도 군산(群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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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7년 10월 11일 |
관련 사건 | 군산 3・1운동 |
주요활동 | 1919년 3월 23일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 |
포상훈격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태어났으며 군산의 정미소에서 피고용인으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5일 군산 시내에서는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뒤이어 군산의 보통학교 학생들이 계획한 만세 운동은 이미 많은 만세 운동 관계자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것이었다. 권재길(權在吉)은 ‘한국 독립 만세. 청년 및 노동자들이 궐기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어째서 방관만 하고 있는가’라는 요지의 글을 작성하여 이를 각 학교 기숙사에 교부하였다. 글을 받은 학생들은 뜻을 같이하여 주변 사람에게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군산 청년 학생들 사이에서 만세 운동 계획이 긴밀히 진행되는 가운데, 각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동향을 감시하면서 운동의 기미가 나타나면 저지하고자 하였다. 기독교 계통의 영명중학교는 서울의 독립운동가들과 교류가 있어 교원들이 만세 운동을 지원한 반면 보통학교는 일제가 운영하는 학교로 학교의 주도권은 일본인 교장이 가지고 있었다. 이에 보통학교 학생들이 동맹하여 퇴학원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항의하고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번번이 감시에 의해 계획이 좌절되었다. 게다가 3월 12일 독립운동가를 수감하고 있던 군산경찰서의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 일제 경찰의 경계도 더욱 삼엄해졌다.
이때 이남율(李南律)에게 ‘한국을 독립시키기 위해서는 학교를 불태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며 함께할 것을 설득하였다. 당시 보통학교 학생이 아닌 일반 시민이었으나 학생들의 만세 시위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일본인 교장과 일본인 교원, 일제에 협력하는 교원들이야말로 독립을 향한 의지를 탄압하는 적이라고 주장하였다. 3월 19~20일경 미리 알코올과 석유의 화력, 연기의 유무 및 구입 가능 여부 등을 타진하였다. 3월 23일 밤 8시 무렵 얼굴을 아는 군산 전주통(全州通)의 신림약국(神林藥局) 주인의 눈을 피하려고 이남율에게 10전짜리 지폐 5장을 건네며 알코올을 구입하도록 하고 장재동(藏財洞)에서 솜을 사왔다. 밤 11시경 보통학교 화장실을 통해 잠입한 뒤 솜에 알코올을 붓고 성냥불로 방화하였다. 이로 인해 보통학교 교사(校舍) 1동 전체가 소각되었다.
사건에 가담한 이남율과 함께 권재길 외 보통학교 학생 5명이 체포되어 1919년 5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방화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7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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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권재길 등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919.5.24
- ・ 「이남율 등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7.12
- ・ 「이남율 등 판결문」, 고등법원, 1919.9.27
- ・ 『매일신보』 1919.5.18・27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6, 1973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 1977
출처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인명사전으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하여 그동안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사전적으로 종합, 정리하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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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수남 –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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