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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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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환

다른 표기 언어 金鳳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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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4년 2월 17일, 경기도 안성(安城)
사망 1945년 5월 6일
관련 사건 후기의병
본관 경주(慶州)
주요활동 1907년 이석용 의병부대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1909년 소규모 의병부대의 의병장으로 활동
포상훈격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관련 인물/단체 이석용 의병부대

1874년 2월 17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읍내면(邑內面) 석정리(石井里, 현 안성시 안성동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상촌공파(桑村公派) 19대손으로 부친은 의병장 김동식(金東植, 1854~1909)이다. 전통적인 유학자 집안에서 성장하였고, 가학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7년 일제에 의한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 체결 및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해산이 일어나자 전국적인 의병항쟁이 전개되었다. 8월 전라북도 진안(鎭安)에서 이석용(李錫庸) 의병장이 3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거의하자, 부친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때 의병장인 이석용은 ‘김동식은 나이가 자신보다 24세가 연장이므로 부(父)라고 불렀고, 김봉환은 나이가 자신보다 4세 연장이므로 형(兄)으로 대우하였다’고 한다. 9월 13일 이석용 의병부대와 함께 진안읍을 공격하여 양총(洋銃) 등을 노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10월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용담군(龍潭郡) 심원산(深原山)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후 장수(長水) ・ 진안 등지에서도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9년 9월부터 일본군에 의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이 전개되어 의병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자 이석용 의병부대가 해산하였다. 이후 30명 정도의 소규모 의병부대를 이끄는 의병장이 되어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속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발다면(發多面)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체포되어 강제노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출옥한 이후에도 군자금 조달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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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1, 1970
  • ・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
  • ・ 김상기, 「한말 호남의병의 항전과 의병장」, 『인문학연구』 98,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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