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분류 | 유물 > 조각 |
---|---|
크기 | 세로: 8.6cm, 가로: 8.9cm, 높이: 8.8cm |
재질 | 동 |
유물설명
제작년도: 1892년
관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신표(信標)의 하나로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재질이나 크기 등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성문화되어 엄격히 규정되었다. 관인은 용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문서의 서식과 임금의 결재를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찍는 낙인(烙印)이 있다. 각 관청의 인장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있는 기관은 당상관이, 그 이하의 관청은 그 기관의 장이 사용하였다.
친군용호영의 관인이다. 용호영은 조선시대 궁궐 숙위를 맡은 관청으로, 1755년(영조 31) 금군청(禁軍廳)을 독립시키면서 생겨났다. 1892년(고종 29) 각 영의 명칭을 모두 친군으로 부르라는 고종의 명에 따라 ‘친군’이라는 명칭을 붙여 새로이 인신(印信)을 주조하였다. 1894년 통위영(統衛營)으로 병합되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친군용호영인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 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