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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고궁박물
관 유물 이
야기

고종 상시호 옥책

다른 표기 언어 高宗 上諡號 玉冊
요약 테이블
분류 유물 > 어책
크기 세로: 26.0cm, 길이: 185.5cm, 두께: 0.8cm, 폭: 15.0cm
재질 청옥(靑玉), 동(銅), 비단
고종 상시호 옥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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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설명

1919년 1월 21일 고종(高宗, 1852~1919)이 세상을 떠난 뒤 고종에게 ‘문헌장무 인익정효(文獻武章 仁翼貞孝)’라는 시호(諡號)와 ‘고종(高宗)’이라는 묘호(廟號), ‘태황제(太皇帝)’라는 존호(尊號)를 올리면서 제작한 옥책이다.

고종은 1907년에 이준 등 밀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하여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체결로 인한 외교권의 강제 박탈을 항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가고 이토 히로부미는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는 구실로 1907년 7월 20일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후 고종은 황권을 황태자 척(坧, 순종)에게 양위하고, 덕수궁 함녕전에 유폐되었다. 이후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1907년 1월 27일(양력)에 이왕직(李王職)에서 고(故) 태왕전하(太王殿下)의 묘호를 ‘고종’으로 하였는데 기초를 확립하고 표준을 세우는 것을 ‘고(高)’라고 하였다. 시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문(文)’은 경천위지(經天緯地)하는 것, ‘헌(獻)’은 박문다능(博文多能)한 것, ‘무(武)’는 크게 바로잡은 공, ‘장(章)’은 법도를 크게 밝힌 것, ‘인(仁)’은 어짊을 베풀고 의에 따른 것, ‘익(翼)’은 백성을 사랑하고 다스리기 좋아하는 것, ‘정(貞)’은 크게 생각하여 삼가며 취하는 것, ‘효(孝)’는 뜻을 이어서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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