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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태생
제우스의 총애하는 딸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Athena’, 혹은 ‘Athene’로, 로마 신화에서는 ‘Minerva‘로 칭한다. 언어학적으로 아테나의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신화학자들 간에 여신이 크레타의 궁전의 여신이었다가 후일 영웅 시대에 이르러 미케네의 영웅 수호신으로 변모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별명 팔라스(Pallas)는 자신이 실수로 죽인 어린 시절 친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테나의 태생은 특이하다. 여신은 아버지인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완전 무장한 성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제우스가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 관계하여 수태시킨다. 그런데 이치의 여신 테미스가 예언하기를, 메티스가 아들을 낳으면 장차 제우스를 밀어내고 신들의 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혼비백산한 제우스는 임신 중인 메티스를 작게 만들어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런데 메티스가 임신한 날로부터 열 달이 가까워지자 제우스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쳐줄 것을 요청한다.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제우스의 정수리를 가르는 순간 갑옷으로 무장하고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제우스의 자식 중 두 명이 아버지 제우스의 몸에서 태어난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다. 그런데 두 신이 태어난 신체의 부위가 다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본능의 상징인 생식기에 가까운 넓적다리를 자궁으로 삼은 반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지혜의 보고인 머리를 가르고 태어나고 있다.
지혜의 여신, 공예의 여신
지혜의 여신 메티스가 잉태하고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인간의 지혜를 상징한다. 지혜는 무지와 야만과 어리석음을 퇴치하는 무기다. 아테나는 무지와 야만을 상징하는 거인족 기간테스와의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여신은 엥켈라도스(Enkelados)를 시실리 섬으로 깔아 죽이고 팔라스(Pallas)를 돌로 쳐 죽여 가죽을 벗겨 자신의 방패에 씌운다. 여신은 야만의 상징인 괴물들을 퇴치하는 영웅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서양의 많은 근대 철학가들의 이상형으로 평가되어 왔다. 철학(philosophy)이란 ‘지혜(sophia)’를 ‘사랑한다(philos)’는 뜻이다. 아테나의 상징 올빼미는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어둠을 밝힌다. 인간의 지혜가 무지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듯이. 독일의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서야 날갯짓을 시작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혜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찾아든다는 뜻이다. 경험과 사색과 반성이 겹겹이 퇴적된 후에야 비로소 인생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혜안을 갖게 되리라. 광기의 철학자 니체가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미친 듯이 몰입했다면, 관념 철학자 헤겔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사려 깊게 관조했다. 여신의 로마식 이름 ‘미네르바’는 오늘날에도 지혜로움과 총명함을 일컫는 의미로 쓰인다. 아테나는 사려 깊고 냉철한 지혜의 여신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문명의 기초가 되는 기술을 관장하는 공예의 여신이기도 하다. 기술은 지혜로부터 나온다. 아테나는 인간에게 목공예, 금속공예, 직조 공예 등 공예 기술과 각종 제도와 규범을 제공해 준 신으로 알려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여신은 공예 기술을 뜻하는 에르가네(Ergane)로 불리어진다. 그리스인들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서양의 과학과 기술 문명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다.
아테나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찬란한 그리스 문명을 일으킨 주역은 아테네 시민들이다. 지혜를 사랑하고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킨 아테네인들이 아테나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숭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테나는 포세이돈과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아테네의 수호신 지위를 획득한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자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더 유용한 선물을 제시하는 신을 수호신으로 삼겠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샘이 솟게 한다. 아테나는 그 샘 옆에 올리브나무를 심는다. 아테네인들은 올리브 열매가 샘물보다 더 유용하다고 판결했고, 아테나는 포세이돈을 물리치고 아테네의 수호신이 된다. 아테네인들의 실용주의적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신의 경지를 엿볼 수 없다. 길쌈과 자수에 빼어난 솜씨를 가진 아라크네(Arachne)라는 처녀가 오만함에 빠져 아테나에게 도전장을 낸다. 여신의 점잖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라크네가 오만함을 버리지 않자 신과 인간 간의 세기의 자수 대결이 벌어진다. 치열한 대결을 벌이던 중 아라크네의 오만함이 극에 달하여 올림포스 신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자수에 그려 넣자 아테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수를 찢어버린다. 그리고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평생 허공에 매달려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Arachne’는 그리스어로 ‘거미’라는 뜻이다.
공예의 여신 아테나는 인간에게 필요한 여러 제도를 만들어주었다. 그중의 하나가 재판 제도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겁탈하려던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여서 두 신들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 아테나는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 즉 ‘아레스의 언덕’에서 최초의 재판을 주관한다. 이 재판에서 아레스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는다. 오늘날까지도 그리스에서는 대법원을 아레이오스 파고스라고 부른다.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에 대한 재판도 여기서 이루어졌으며, 아테나가 재판장을 맡은 바 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를 뚫고 완전무장한 전사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녀가 전쟁의 여신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여신은 ‘선봉장’이라는 의미의 프로마코스(Promachos)로 불리어진다.
올림포스 신족에는 전쟁을 주관하는 신이 둘이 있다. 아레스와 아테나이다. 그러나 두 신이 주관하는 전쟁의 의미는 다르다. 아레스가 맹목적이고 파괴적인, 즉 공격적인 전쟁을 주관한다면, 아테나는 지혜와 기술의 산물인 문명과 도시를 수호하는 방어적인 전쟁을 주관한다. 아레스의 주무기는 공격적인 창이고, 아테나의 주무기는 방어적인 방패다. 여신의 또 다른 별명 폴리아스(Polias)는 ‘도시의 수호자’라는 뜻이다. 전쟁의 신을 이렇게 이원화하려는 것은 파괴 본능과 지배욕에 빠진 인간들의 아전인수 격의 명분 쌓기 의도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테나는 의롭고 용맹스러운 영웅들의 후견인이며,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늘 동반한다. 여신은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과 같은 영웅들의 든든한 후견인이다. 영웅들이 위기에 처하면 아테나가 어김없이 나타나 구원의 손을 건네준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보는 이를 즉시 돌로 만들어버리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다. 메두사는 아리따운 처녀였으나 자신의 미모를 지나치게 뽐내다가 여신의 미움을 받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뱀의 형상을 한 흉측한 몰골로 변한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의 방패에 박아준다. 아테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모든 공격자를 즉시 돌로 만들어버리는 메두사의 머리가 박힌 방패이며, 이는 방어적인 전쟁을 주관하는 여신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아테나의 별명 중의 하나가 팔라스다. 팔라스는 어린 시절 아테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아테나가 사소한 다툼 끝에 실수로 그녀를 죽이고 만다. 아테나는 자신의 과오로 죽은 팔라스의 모습을 조각해 제우스의 방패인 아이기스(Aigis) 복판에 매단다. 언젠가 제우스가 이 조각상을 땅으로 던진다. 이 조각상이 바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도시를 지켜준다는 팔라디온(Palladion)인데, 트로이 전쟁에서 이 조각상이 트로이성을 오랫동안 지켰다는 설이 있다. 트로이는 오디세우스에게 팔라디온을 도난당한 후 패망한다.
차가운 처녀신
아버지의 몸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아폴론과 더불어 올림포스 부권 신화를 지탱하는 쌍두마차다. 여신의 또 다른 별명 오브리모파트레(Obrimopatre)는 ‘강력한 아버지의 딸’이라는 뜻이다. 아테나가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의 손을 들어준 대표적인 사례로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오레스테스의 죄를 묻는 재판이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벌어진다. 복수의 여신들이 검사를 맡고 아폴론이 변호인을 맡아서 팽팽한 설전이 전개된다. 아테네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는 유죄와 무죄 동수였다. 그런데 재판장 아테나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아테나는 처녀신이다. 비록 모권에 맞서 부권의 우위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현실적인 판단일 뿐이다. 여신은 처녀의 정절을 끝까지 고집함으로써 자신이 결코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가 아님을 온몸으로 항변한다. 여신이 처녀의 신분을 고수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철저한 독립성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 최고의 걸작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은 ‘처녀의 집’이라는 뜻으로 처녀신 아테나 파르테노스(Parthenos)에게 바쳐진 것이다.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가 페이디아스(Pheidias)의 작품으로 알려진다. 파르테논은 기하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인류 문명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46개의 모든 기둥이 안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1760미터 상공에서 한 점으로 모이도록 설계한 사실이라든지, 보는 이의 시각적 안정감을 위하여 각 기둥의 굵기와 간격을 달리한 사실 등 불가사의한 건축술이 명작을 빛내고 있다.
순결한 처녀를 고집하는 아테나의 정절 의식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을 찾아온 아테나에게 반하여 그녀를 범하려고 덮친다. 그러나 아테나가 너무나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열이 오를 대로 오른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의 허벅지에 사정을 한다. 아테나가 그 정액을 양털로 닦아 땅에 버리자 흙에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에릭토니오스(Erichthonios)다. 그는 도시국가 아테네의 전설적인 시조로 알려져 있다.
머리가 좋으면 가슴이 냉랭한 것인가. 이성의 아폴론이 그랬듯이 지혜의 아테나 역시 차가운 처녀신이다. 여신은 남성을 사랑한 적도 없고 육체관계도 관심이 없다. 철저한 독신주의자다. 방패에 박힌 메두사의 머리는 보는 이를 즉시 돌로 만들어버린다. 여신은 석녀다.
그러나 아테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부권 신화의 수호신이다. 남성의 권위를 적극 인정한다. 그렇지만 남성에게 종속되기는 싫어한다. 철저히 독립적이다. 그것은 여신이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부권을 인정하는 것은 남성의 힘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제도권 속으로 편입되어 그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여신은 여권을 위해 싸우기에는 재능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에고이스트다. 그러므로 여신은 ‘남성적 여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몸은 여성이지만 마음은 남성이다. 아테나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독신 전문 여성의 표본이다. 여신은 똑똑하고 차가운 커리어 우먼(career women)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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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서양의 문학, 심리, 미술, 음악, 철학, 건축 등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그리스 로마 신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올림포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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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테나 –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윤일권 · 김원익, 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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