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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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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929년 |
성격 | 독립운동단체 |
유형 | 단체 |
분야 | 역사/근대사 |
요약 1929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단체.
설립목적
창당 초기에는 민병길(閔丙吉)·윤기섭(尹琦燮)·성주식(成周寔)·신익희(申翼熙)·연병호(延秉昊)·최용덕(崔用德)·안재환(安載煥)·김홍일(金弘壹)·염온동(廉溫東) 등이 중심이 되어 진보적 민주 정당을 지향하면서,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단결과 독립 의식의 고취를 당면의 목표로 하였다.
기능과 역할
일정한 정당 강령을 표명하고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중국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과 나아가 중국 국민정부와 연합 전선을 꾀함으로써 중국국민당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예하에 비밀결사인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하고 안재환을 단장으로 하여 무력 양성에 힘쓰는 한편, 기관지 『우리 길』을 펴내어 독립사상의 고취와 항일 투쟁의 전개를 분명히 하였다.
1932년 11월광복동지회[김규식(金奎植)]·조선혁명당[최동오(崔東旿)]·의열단(한일래)·한국독립당[이유필(李裕弼)] 등이 협의하여 조직한 독립운동의 통일전선인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에 가맹,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을 통해 중국 국민정부와의 연합전선을 꾀하였다.
그 결과 핵심 간부들은 동맹의 간부로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위원장 윤기섭은 중국 동삼성(東三省)지역의 정객 주경란(朱慶欄)과 제휴, 중한연합의용군(中韓聯合義勇軍)의 조직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익희는 중국 국민정부와 제휴하여 국민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의 염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33년말 일제 관헌의 조사에 의하면, 단체의 간부는 집행위원장 윤기섭, 외교위원 신익희 외에 중견 간부로 최용덕·왕웅(王雄, 김홍일)·신영삼(申榮三)·민병길·김사집(金思潗)·염온동·이동주(李東珠) 등으로 되어 있다.
1937년 조사에서는 중앙 위원으로 지청천(池靑天)·최동오·유동열(柳東說)·이광제(李光濟)·박창세(朴昌世)·양기진(梁基津)·현익철(玄益哲)·김학규(金學奎)·이운환(李云煥)·강창제(姜昌濟)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지청천·최동오·박창세·강창제·이광제 등 5명은 중앙 상무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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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독립운동대사전』1(이강훈, 대한민국광복회, 1985)
- ・ 『한국독립운동사자료』3(국사편찬위원회, 1973)
- ・ 『關內地區朝鮮人反日獨立運動資料彙編』上(楊昭全, 遼寧民族出版社, 1987)
- ・ 『改訂增補 朝鮮民族獨立運動秘史』(坪江汕二, 高麗書林, 1986)
- ・ 『韓國獨立運動の硏究』(佐佐木春隆, 國書刊行會, 1985)
- ・ 『朝鮮獨立運動』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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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한국혁명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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