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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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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유일당북경촉성회

다른 표기 언어 韓國獨立唯一黨北京促成會 동의어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요약 테이블
시대 근대
설립 1926년 10월
성격 독립운동단체
유형 단체
해체 1929년 말
설립자 원세훈(元世勳)
분야 역사/근대사

요약 1926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설립배경

1920년 청산리대첩 이후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일본의 적극적인 무력 탄압과 독립운동단체의 분열로 크게 약화되었다.

이에 1926년 7월 중국 상해(上海)의 삼일당(三一堂)에서 송병조(宋秉祚)·김종상(金鍾商)·서태수(徐太守)·김보연(金甫淵)의 발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립과 각 단체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연설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안창호(安昌浩)는 자치론·실력양성론을 타협주의로 규정, 비판하고, 주의·주장을 초월해 중국국민당과 같은 일대혁명당(一大革命黨)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안창호는 8월과 9월에 북경의 유력자이며 좌익세력의 대표자인 원세훈(元世勳)을 만나 대동단결을 촉구하였다. 이에 원세훈이 중심이 되어 10월 10일부터 세 차례의 회합을 통해 16일에 선언서를 채택함으로써 이 단체가 결성되었다.

기능과 역할

집행위원으로 원세훈·장건상(張建相)·조남승(趙南升)·조성환(曺成煥)·배천택(裵天澤)·김광천(金光泉)·박건병(朴建秉) 등 7명이 선출되었다.

회원은 강부약(姜扶弱, 또는 九禹)·김광선(金廣善)·김운파(金雲坡)·김유성(金有成)·김인제(金人濟)·김일성(金一成)·김찬(金贊)·김해산(金海山, 善山)·권경지(權敬止)·이광(李光)·이찬(李贊)·박해관(朴海觀)·송호(宋虎)·배운영(裵雲英)·신익희(申翼熙)·윤괵추(尹慖椎)·원흥(元興)·황욱(黃郁, 또는 一山) 등이었다.

28일 회의에서 각지에서의 대독립당 조직운동을 조속히 촉구한다는 뜻에서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할 것, 한국의 절대 독립을 주장할 것, 한국혁명동지는 당적(黨的)으로 결합할 것, 민족혁명의 유일전선을 만들 것, 전세계 피압박 민중의 단결을 촉구할 것 등의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그 뒤 자금난과 경성파·평안파·영남파 등의 갈등이 일어났으나 본회의 창립은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에 영향을 끼쳐, 1927년 4월 이후 상해·광둥(廣東)·난징(南京)·우창(武昌) 등지에서 촉성회가 창립되었다. 9월에는 상해를 중심으로 각 촉성회 연석회의 개최를 제의, 11월에 개최하였다.

기관지로 『독립당촉성보(獨立黨促成報)』를 발간했으며, 1929년 말 공산계의 책동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 결성이 도화선이 되어 각처에서 유일당 운동 내지 기존 단체의 통합 운동이 활발해져 독립운동 통일전선구축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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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4(국사편찬위원회, 1968)
  • ・ 『高等警察要史』(朝鮮總督府, 1934)
  • ・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韓國唯一獨立黨促成會)에 대한 일고찰(一考察)」(김희곤, 『한국학보(韓國學報)』 33, 일지사, 1983)
  • ・ 「재만항일독립운동단체(在滿抗日獨立運動團體)의 전민족유일당운동(全民族唯一黨運動)」(정원옥, 『백산학보(白山學報)』 19,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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