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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삼국/고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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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 | 고구려시대,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
성격 |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
유형 | 유적 |
소재지 | 북한 평양특별시 대성구역 고산동 |
분야 | 역사/고대사 |
요약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신도·불꽃무늬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개설
평양 고산동1호분은 고산동고분군에 포함되어 있으며 천장부가 완전히 유실되어 사라졌다. 봉토는 방대형으로 조사 당시 길이 20m, 높이 3.5m로써 대형급이었다. 널길〔羨道〕이 널방〔玄室〕남벽의 동쪽에 치우친 대표적인 사신도(四神圖) 위주의 외방무덤〔單室墓〕으로서, 주벽(主壁) 상부 이상은 파괴되어 없어졌다.
내용
널방 크기는 동서 3.06m, 남북 3.3m로서 정방형에 가까우며, 벽면 높이는 1.5m 가량 된다. 벽화는 잘 바른 회벽 위에 사신도를 그렸지만, 청룡·백호·현무의 일부만 확인되었다. 사신 표현 양식은 고식(古式)에 속하는데, 청룡도와 백호도에는 각각 “□신광난□□□진력(□神光難□□□進力)”과 “백신원락길□(白神□□遠洛吉□)""호(虎)"〔'신(神)' 옆 괘선 바깥쪽에 ‘호(虎)’라는 글자가 써져 있음〕라는 묵서가 있다.
그밖에 남벽에는 수문장이 그려져 있고, 각 벽에는 건축의장과 불꽃무늬〔火炎文〕가 남아 있다. 이는 생활풍속도 계통 벽화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써, 고산동1호분이 사신도로 전환되던 과도기적 형식임을 말해준다.
널길에는 문지기 개〔門犬〕같은 괴수(怪獸)를 그렸고, 주벽에는 사격(斜格)의 바둑 문대(文帶)를 벽면 아랫부분 1/3정도에서 옆으로 그어 상하 2단으로 만들고 상부의 넓은 공간에는 사신, 하부에는 삼각불꽃무늬〔三角火炎文〕과 곡선구름무늬〔曲線雲文〕등을 가득 그려넣었다.
불꽃무늬는 중기의 것을 닮았고 둘레 가장자리의 C자문도 뚜렷하다. 사신은 비교적 세화(細畵)로서 강서대묘(江西大墓)의 그것을 연상시키나, 현무의 모습은 고졸하여 이 고분이 중기와 연결되는 가장 초기의 사신총임을 알 수 있다.
사신도의 치밀한 표현으로 보아 이 고분은 5세기 후반이나 늦어도 6세기 전반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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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전호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전호태, 사계절, 2000)
- ・ 『고구려의 고고문물』(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 ・ 『고구려고분벽화』(이태호·유홍준, 도서출판 풀빛, 1995)
- ・ 『한국벽화고분』(김원룡, 일지사, 1980)
- ・ 「한국의 고분」(김원룡,『교양국사총서』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 「대성산일대의 고구려유적에 관한 연구」(채희국,『유적발굴보고』9,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 ・ 『高句麗考古學硏究』(東潮, 吉川弘文館, 199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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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평양고산동일호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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