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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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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고산동구호분

다른 표기 언어 平壤高山洞九號墳 동의어 고산리제9호분, 고산리9호무덤
요약 테이블
시대 고대/삼국/고구려
건립시기 고구려시대, 5세기
성격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유형 유적
소재지 북한 평양특별시 대성구역 고산동
분야 역사/고대사

요약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사신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평양 고산동9호분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지만 조사 당시 직경 25.8m, 높이 4.5m의 대형분으로서 고산동고분군 중에서도 대규모에 속한다. 널방은 반지하식으로 남향이며 널길〔羨道〕, 앞방〔前室〕, 좌우 옆방〔側室〕, 통로, 뒷방〔後室〕으로 구성된 두방무덤〔雙室墳〕이다. 천장은 궁륭(穹窿) 평행삼각굄천장이다.

뒷방은 남북 3.5m, 동서 3.4m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벽면 높이는 약 2m이다. 좌우 옆방이 달린 앞방은 동서 길이가 뒷방보다 긴 4.5m이고, 좌우 옆방은 남쪽으로 꺾여 있다.

이러한 널방 구조는 5세기경 연화총(蓮花塚),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 대안리 1호분 등과 유사한 고식(古式)이다. 벽화는 뒷방 회벽 위에 그렸는데, 앞·뒷방 모두 박락이 심하고 잔존하는 그림도 희미하여 전모를 알아보기 힘들다.

벽화의 내용은 인물풍속도(人物風俗圖)와 사신도(四神圖)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네 벽의 네 귀에 기둥을 그리고 거기에 사신과 인물을 그렸다. 현재는 사신도의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물도에 사신도를 가미시킨 초기의 예로서 연대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속한다. 무덤 구조와 벽화 내용으로 보아 이 무덤은 5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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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 『고구려고분벽화』(이태호·유홍준, 도서출판 풀빛, 1995)
  • ・ 『한국벽화고분』(김원룡, 일지사, 1980)
  • ・ 「대성산일대의 고구려유적에 관한 연구」(채희국,『유적발굴보고』9,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 ・ 『高句麗考古學硏究』(東潮, 吉川弘文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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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평양고산동구호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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