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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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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71년(선조 4) |
사망 | 1640년(인조 18) |
경력 |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 예빈시별좌, 사헌부감찰, 문경현감 |
유형 | 인물 |
관련 사건 | 병자호란 |
직업 | 학자 |
성별 | 남 |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본관 | 덕수(德水, 지금의 경기도 개풍) |
요약 조선시대 중림도찰방, 사헌부감찰, 문경현감 등을 역임한 학자.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길보(吉甫). 증참찬 이천(李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原秀)이다. 아버지는 이우(李瑀)이며, 어머니는 덕산황씨(德山黃氏)로 진사 황기로(黃耆老)의 딸이다. 이이(李珥)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에 진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 문과 회시에 통과되었으나 과거시험의 공정성에 회의를 품고 전시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서인계열의 인물로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향리인 선산군에 돌아가서 야인생활을 하였다. 그 때 동지들과 의논하여 길재(吉再)의 사우(祠宇)를 낙동강 상류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인조반정 이후에 황산도찰방으로 임명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황폐되었던 역로(驛路)를 완전히 복구하여 상을 받은 바 있고, 또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이 되어 역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 뒤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예빈시별좌·사헌부감찰을 거쳐 문경현감으로 나가서 치적을 남겼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향인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었으며, 문경인들도 이경절을 도와서 그 지역을 잘 지켰다. 그러나 삼전도화약(三田渡和約)의 소식을 전하여듣고, 고향에 돌아가서 관계에는 나오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그림과 글씨 및 가야금에 능하였다. 1651년(효종 2)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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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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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이경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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