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시대 | 고대/삼국 |
---|---|
건립시기 | 고구려시대(6세기 중엽∼7세기 초) |
성격 |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
유형 | 유적 |
소재지 |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 |
분야 | 역사/선사문화 |
요약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신도·장식무늬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분구는 원형이고, 무덤의 구조는 널방 남벽의 중앙에 달린 2단의 널길과 평면이 방형인 널방으로 된 외방무덤이다. 널방의 네 벽은 각각 큰 화강암 판석 한 장으로 축조되었다. 천장은 2단의 평행 굄돌을 내밀어 얹어놓고 그 위에 한 장의 덮개돌로 덮은 평행 굄천장이다.
벽화는 사신도 및 장식무늬로 잘 다듬은 돌벽면에 직접 그려졌다. 널방의 벽화는 남벽 입구 좌우에 한 쌍의 주작을 그렸고, 동벽에는 청룡, 서벽에는 백호, 북벽에는 현무를 세련된 필치로 그렸다.
천장에는 제1단 평행 굄돌 옆면에 인동무늬를, 제2단 평행굄돌 옆면에는 인동·당초무늬를 그렸으며, 그 아래로 향한 면은 괴운무늬로 장식하였다. 천장의 뚜껑돌 중앙에는 연꽃무늬, 남북에는 봉황, 동쪽에는 일상(日象), 서쪽에는 월상(月象)을 배치하였으며, 모서리에는 연꽃무늬와 인동무늬를 그렸다.
일상은 원 속에 세발 까마귀를 그려 나타냈고, 월상은 원 속에 두꺼비를 그려놓았다. 이 고분의 벽화에서는 건축적 표현을 전혀 띠지 않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특징적인 한 면을 엿볼 수가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표현에는 커다란 두 개의 흐름이 있다. 하나는 건축적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회화적 표현이다.
의의와 평가
건축적 표현은 묘실의 네 벽 모서리에 기둥·두공·소로·도리 등을 그려 널방 내부를 목조건물의 실내와 같이 장식하는 것이다. 강서중묘에는 이러한 건축적 표현이 전혀 없어 벽화의 시대적 흐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준다.
연대는 6세기 중엽 또는 7세기 초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강서대묘보다는 화법이 고졸하여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강서삼묘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전호태, 풀빛, 1999)
- ・ 『한국(韓國)의 벽화고분(壁畵古墳)』(김기웅, 동화출판공사, 1982)
- ・ 『朝鮮の建築と藝術』(關野貞, 岩波書店, 194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강서중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