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세상을 바꾼

향신료, 대항해시대를 열다

다른 표기 언어

지중해 동부 연안에 도착한 향신료는 베네치아, 제네바 공국 등을 통하여 유럽에 전해졌다. 이탈리아 공국들은 중개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꽃피운 것도 중개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덕분이었다. 오랫동안 향신료는 아랍 상인들이 가져와 베네치아 상인들이 중개하여 전 유럽으로 팔았다고 할 수 있었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유럽은 향신료를 직접 구하기 위해 새로운 바닷길 개척에 나섰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금과 향료의 땅'을 찾아 서쪽 항로로 길을 떠났고 천신만고 끝에 '인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인도가 아니라 오늘날 쿠바와 아이티 등이 있는 카리브 해의 섬들이었다. 콜럼버스의 착각 덕분에 오늘날에도 이 지역은 '서인도 제도'라고 불린다. 콜럼버스는 1498년 3차 항해이자 마지막 항해에서도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오리노코 강 하구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였고 그곳 원주민도 '인디언(인도 사람)'이라고 믿었다. 결국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497년과 1499년에 두 차례 항해를 한 끝에 이곳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유럽인들은 그의 이름을 따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불렀다.

1490년대 말에 이르자 콜럼버스의 서쪽 항로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고 남동쪽으로 항해하여 인도로 가는 바닷길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초부터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로 항해하는 계획을 세웠다. '항해왕'이라고 불리는 포르투갈 왕자 엔리케는 아프리카 서해안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새로운 인도 항로의 기초를 다졌다.

포르투갈의 선장 바스코 다 가마가 1497년에 리스본을 출항하여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1498년 5월 인도 서해안 말라바르 해안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드디어 새로운 인도 항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1511년 포르투갈은 '향신료의 섬'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에 도착했고 가장 중요한 향신료 교역항인 말레이 반도 남서부에 있는 말라카에 기지를 세웠으며, 1512년에는 자바 섬까지 진출했다. 그다음에는 인도 서부 해안의 향신료 항구를 장악한 뒤 이슬람 중간 상인들에게서 향신료 교역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바스코 다 가마는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여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 다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포르투갈 상선이 '향신료의 섬'까지 무사히 개척해 후추와 육두구, 정향을 한가득 싣고 돌아왔다는 소식은 베네치아 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오랫동안 이탈리아와 아랍에게 막대한 이득을 주었던 향신료 무역은 새로운 정복자의 수중에 넘어갔다. 포르투갈이 동방과 직접 독점 무역을 하면서 중세 이래 중개 무역으로 승승장구했던 이탈리아 상인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었다. 동방 무역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무역의 중심지는 십 수 세기 동안 지중해였지만, 이제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옮겨진 것이 분명했다. 또한 향신료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향신료 독점은 100년을 가지 못했다. 1500년대 후반에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향신료의 섬 몰루카 제도를 차지하고 인도 서해안, 인도네시아, 말레이 반도를 빼앗았다.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면서 인도와 동남아시아 바다에서는 상대방의 함대를 겨냥한 함포 사격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향신료 무역에 있어서 네덜란드가 우위를 차지하자 영국 동인도 회사는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차와 아편 무역에 집중했고,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인도와의 면, 비단, 쌀, 커피 무역에 집중했다. 1619년에 자바 섬을 중심으로 하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17세기 중엽부터 향신료에 대한 흥미가 점차 사그라졌다. 예전보다 구하기 쉬워진 탓에 더 이상 사치와 부유함을 상징하지도 않았다. 결국 향신료는 보편화되면서 상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유럽 궁정에서는 요리에 향신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한진 집필자 소개

대학에서 서양요리와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다가 요리의 매력에 빠져 프랑스 파리에 있는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를 마치고 프랑스와 한국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펼쳐보기

출처

세상을 바꾼 맛
세상을 바꾼 맛 | 저자정한진 | cp명다른 도서 소개

세상을 움직인 먹을거리 이야기. 먹을거리의 역사를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 단맛, 감칠맛 등 여섯 가지 맛 속에서 살펴보고 미래의 먹을거리와 삶을 그려본다.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세계사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향신료, 대항해시대를 열다세상을 바꾼 맛, 정한진, 다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