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시대 | 신라 |
---|---|
소재지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조남산 일대 |
종류 | 석성 |
신라 지방행정체계를 알 수 있는 목간(木簡)이 출토된 성산산성
성산산성(사적 제 67호)은 함안군 가야읍 조남산(해발 139.4m)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1.4km 정도의 석축성이다. 성벽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연경사를 이루고 있는 산 정상부를 따라 가다가 동쪽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되어 있다. 보은 삼년산성, 문경 고모산성 등 고대 석축산성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계곡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축성술과 함께 우리나라 고대 석축산성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산성이다. 성안에는 동, 서, 남 3개소의 성문터가 있다.
동문지 부근의 저습지 추정유구에서는 나무방망이, 빗 등 많은 소형목제품과 함께 먹으로 글자를 쓴 목간(글을 적은 나뭇조각) 230여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 확인된 지명과 내벽에서 확인된 축조구분점은 명활산성비, 남산신성비, 신대리성의 명문(돌에 새겨 놓은 글) 등의 사례에서 보듯 여러 집단이 성벽축조에 동원되어 구간별로 축성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목간에서는 ‘일벌(一伐)’, ‘일척(一尺)’ 등 신라의 관직 이름을 비롯하여 많은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6세기 중반 신라의 지방행정체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에서 동문지, 남문지,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은 너비 8∼9m, 현재 남아 있는 높이 2∼5m 규모의 협축식 성벽과 신라산성의 특징을 보이는 삼각형의 외벽보강구조물, 그리고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목간, 동문지 부근의 저습지내에서 출토된 목제품 등이 확인되어, 이 산성은 아라가야가 멸망한 직후 신라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축조과학
성산산성은 그동안 토석혼축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발굴조사 결과 너비 740~920cm 정도의 협축식 석성으로 외벽기저부에 단면 삼각형태의 기단보축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체성의 너비는 8m 내외, 성벽 안과 밖의 바른층쌓기 공법, 배수로, 성 외벽 아랫부분의 기단보축, 경사진 지형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쌓은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치밀한 설계에 의해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쪽 성벽의 내벽 쪽에서는 현 표토 3.1m 아래에서 길이 약 5.4m, 너비 약 50cm, 깊이 약 50cm의 ‘Y자’ 모양의 도수로(물을 끌어들이는 길) 및 일직선 모양의 도수로와 연결된 직사각형의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가 확인되었다. 서쪽 성벽에서는 너비 30cm, 높이 20cm 크기의 직사각형 입수구가 성벽 면에서 확인되었다. 동쪽 성벽에는 내벽의 지면과 일치하는 높이에서 3개의 너비 30cm, 높이 20cm 크기의 입수구가 나란히 확인된 바 있으며, 이 곳의 반대편에서 약 1.1m 하단에서 3개의 직사각형의 출수구가 역시 나란하게 확인되었다. 성벽구간 중 수구를 포함한 일부구간은 나중에 축조하여 끼워 넣듯이 설계되어 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신라의 산성
추천항목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함안 성산산성 – 국립중앙과학관:성곽 축조 과학관, 국립중앙과학관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