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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유지에 필요한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반드시 조직 세포로 공급되어야 한다. 이 산소를 우리 몸의 구석구석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피 속의 적혈구다.
적혈구는 몸 안에 존재하는 세포로서는 이례적으로 '핵 없는 세포'다. 양면이 둥글게 패인 원반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도 독특하다(사진 1). 이런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섬유 모양의 단백 분자가 울타리처럼 세포막 안쪽에서 형태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혈구라고 해서 모두 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유류를 제외한 나머지 척추동물의 적혈구에는 핵이 있다. 사실, 포유류의 적혈구도 생성 초에는 핵이 있다. 하지만 성숙하면서 퇴화한다. 이처럼 포유류의 적혈구가 핵을 잃고, 몸이 가늘어진데다, 원반 모양으로 산뜻해진 것은 가스를 교환한다는 효율적인 면에서, 또 가느다란 모세혈관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도 큰 진보가 아닐 수 없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백혈구와 같은 줄기세포에서 분화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엇이 될지 확실하지 않은, 그저 둥근 모양의 세포였다. 그러다가 적아구(赤芽球, Normoblast)라고 불리는 단계에 이르면 달걀 프라이처럼 커다란 핵을 가진 모습이 되고(사진 2, 사진 3), 이윽고 세포질에 헤모글로빈이 나타나면 분명한 적혈구가 된다.
적아구는 성숙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수십 개의 대식세포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란다(사진 5, 사진 6). 대식세포는 원래 이물질이나 노화한 세포 등을 잡아먹는 포식세포다. 그렇다면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도 마음에 드는 아이에게는 자기 젖을 물리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 대식세포는 적아구에 직접 접촉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물질[인터루킨1(Interleukin 1) 등]을 분비하는 것에 의해 적아구의 생육을 돕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대식세포는 발육이 나쁜 아이는 사정없이 잡아먹는 식으로 솎아낸다.
이같이 살벌한 대식세포의 보호에서 벗어난 적아구는 골수의 혈관으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핵을 잃는다. 이때 핵은 모체에서 분리된 갓난아기처럼 배출되어 근처에 있는 대식세포에 의해 처리된다(사진 7). 세포에는 복주머니의 입구를 조르는 끈 같은 주름이 남으며, 혈관 안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한동안 만두 같은 모양을 띠고 있다(사진 8). 이 상태에서 특별한 염색을 실행하면 색소에 염색되는 그물 모양의 반점이 보이기 때문에 망상적혈구(網狀赤血球, Reticulocyte)라고 부른다. 적혈구가 성숙하면 그와 함께 세포의 골격이 형성되고, 한 단계 진화하여 만두 모양에서 얄팍한 원반 모양으로 바뀐다.
한편 유전성 질병으로서 적혈구가 이상한 모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낫 모양, 타원형, 구상적혈구증 등이다(사진 9). 또 후천적으로 적혈구의 일부가 기묘한 변형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사진 4). 이런 식으로 이상한 모양을 가진 세포를 세포골격의 분자 수준에서 연구한다면, 유전자-단백질-세포 형태의 인과관계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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