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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왕개보(王介甫), 王安石송나라의 재상이자 문필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1069년부터 1076년 무렵까지 균수법, 시역법, 면행법, 청묘법, 면역법, 보갑법, 보마법 등의 신법 개혁을 단행했다. 한자의 연원과 제자 원리 등을 연구한 《자설(字說)》, 문집인 《왕임천문집(王臨川文集)》, 《임천집습유(臨川集拾遺)》 등을 남겼다. 개혁에 일...
- 출생 :
- 1021년
- 사망 :
- 10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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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부국강병책 추진왕안석이 갓 즉위한 22세의 젊은 황제 신종에게 혁신적인 부국강병책을 제안했다. 이른바 ‘신법’이었다. 거란과 서하 등 주변국의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하던 신종은 왕안석의 제안대로 개혁에 착수했다. 신법은 군사 제도 개편에서 과거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대상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 시대 :
- 1069년
- 국가/대륙 :
-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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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방전균세법 시행왕안석이 지주들의 탈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전균세법을 시행했다. 방전균세법이란 정부에서 농지를 직접 측량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대지주들이 지닌 미신고된 토지를 적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방전균세법의 시행으로 송나라의 재정은 대폭 개선된다. 그러나 지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개혁파는 점차...
- 시대 :
- 1072년
- 국가/대륙 :
-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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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 남송의 흥망, 왕안석의 신법왕안석(王安石)은 천희 5년(1021) 임강군(강서성 청강현)에서 태어났다. 그가 진사가 된 지 2년 후에 서하와의 강화가 체결되어 막대한 세공의 지출과 군비의 지출 등으로 국가의 재정이 흔들리게 되었다. 왕안석은 당시의 황제 인종에게 상소를 올려 소수인의 폭리를 억제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한 법제의 개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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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강병을 위한 변법 개혁, 왕안석의 신법이런 각성은 두 번의 변법 개혁으로 표출되었는데, 첫 번째는 1041년부터 1048년까지 범중엄(范仲淹)이 주도했고, 두 번째는 1069년부터 1076년까지 왕안석(王安石)이 주도했다. 먼저 범중엄은 인종의 명으로 〈십사소(十事疏)〉라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십사소〉는 대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내부를 공고히...
- 시대 :
- 10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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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의 신법국가 재정 확보와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왕안석이 실시한 신법 북송 신종 때, 재상 왕안석이 실시한 부국강병책으로, 부유한 지주와 상인의 이익을 억제하고 빈민과 소상인을보호하는 개혁적인 여러 신법(청묘법·시역법·모역법·균수법·보갑법·보마법)을 시행하였으나 보수파 관료들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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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신법의 변질송나라 황제 휘종이 신법 지지파인 채경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기회주의자였던 채경은 사치벽이 심한 휘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매를 강화하거나 토지세를 높이는 등, 신법을 이용해 재정을 크게 늘렸다. 더 많은 세금과 노동에 시달리게 된 백성들은 정부의 착취 수단으로 전락한 신법에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시기...
- 시대 :
- 1103년
- 국가/대륙 :
-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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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 사군실, 司馬光은 북송 중기의 정치가이자 사학자로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꼽히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했다. 정치가로서의 그는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한 구법당의 영수로서 철종이 즉위한 후 신법을 모두 폐지했다. 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수(迂叟)로 아버지 사마지(司馬池)가 광주 광산에...
- 출생 :
- 1019년
- 사망 :
- 10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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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에서 비롯된 북송의 위기, 3당의 당쟁영종의 부친 묘를 인종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친부인 복왕(僕王)으로 삼을 것인지를 놓고 대립했다. 당시만 해도 당쟁은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으나, 왕안석의 신법이 실시되면서 송 조정은 신법당과 구법당으로 나뉘어 격렬한 당쟁을 벌였다. 왕안석의 신법은 정치 개혁에 뜻을 둔 신종(神宗, 재위 1067~1085)이...
- 시대 :
- 10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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