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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제국의 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떠오르는 태양, 마케도니아 그리스 인들이 발칸 반도(유럽 남부, 지중해 동부에 튀어나와 있는 삼각형의 반도)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 그냥 북부에 남아 있다 다리우스 1세 때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작은 나라가 바로 마케도니아였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 1세(기원전 498~기원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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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이룬 대제국의 꿈,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ros the Great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으며,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명을 융합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자 노력했으며 동·서양 융화정책으로 결혼정책 등을 펴나갔다. BC 323년 열병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고, 그의 ...
- 출생 :
- BC 356
- 사망 :
- BC 323
- 국적 :
- 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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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제국 강화받았다. 왕위 후계자가 지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휘하 장군들은 필리포스 2세의 약간 얼빠진 서자인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와, 록사나에게서 난 알렉산드로스의 유복자 알렉산드로스 4세를 공동 왕으로 지명하고 자신들끼리 여러 차례의 담합을 거쳐 사트라프직을 나누어 가졌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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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지중해 해안지방과 이집트의 정복이수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남쪽으로 시리아와 페니키아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그의 목표는 페르시아 함대를 기지로부터 고립시켜 전투력을 파괴하려는 데 있었다. 페니키아 도시들인 마라토스와 아라도스는 저항 없이 수중에 들어왔다. 그는 파르메니오를 앞서 파견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다리우스의 군자금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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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에 대한 평가알렉산드로스가 품었던 구상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가 기록한 웅대한 지중해 서부 정복 계획과 세계왕국의 건설 구상은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의 후계자들과 군대는 그 계획을 이내 포기했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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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 중앙 아시아 원정다리우스가 죽자 알렉산드로스가 대왕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장애물이 없어졌다. 이 해(BC 330)에 새긴 로도스의 한 명문(銘文)에서는 그를 '아시아(즉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라고 불렀으며 그 직후부터 아시아에서 발행한 주화에는 왕의 칭호가 덧붙었다. 엘부르즈 산맥을 넘어 카스피 해 지방으로 가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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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인도 침공BC 327년 초여름 알렉산드로스는 지휘부가 재편되고 증강된 군대를 이끌고 박트리아를 떠났다. 플루타르코스가 말한 12만 명의 병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노새몰이꾼과 낙타몰이꾼, 의료진, 행상인, 놀이패, 여자와 아이들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보조인력이 포함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전투병력은 아마도 3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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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생애격파한 카이로네아 전투에서는 좌익군을 지휘했고 테베의 신성동맹을 격파할 때 개인적인 용맹성을 보였다. 1년 후 필리포스는 올림피아스와 이혼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새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석상에서 한바탕 분란을 일으킨 뒤 어머니와 함께 에페이로스로 달아났다가 나중에 일리리아로 갔다. 그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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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소아시아 정복과 이수스 전투BC 334~333년 겨울 알렉산드로스는 소아시아 서부를 정복하고 리키아와 피시디아의 산악부족들을 복속시켰으며 BC 333년 봄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페르가로 진군했는데, 운좋게도 바람의 방향이 바뀐 덕택에 클리막스 산의 절벽을 통과했다. 이때 해수면이 낮아진 사실을 두고 역사가 칼리스테네스를 비롯한 알렉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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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왕위에 오를 때부터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원정을 결심하고 있었다(→ 전쟁). 그는 성장하는 동안 늘 그 목표를 염두에 두었으며 더욱이 필리포스가 창건한 군대를 유지하고 자신이 빚진 500탈렌트를 갚기 위해서는 페르시아의 부가 필요했다. 그리스 원정군인 만인대와 스파르타의 아게실라오스가 페르시아 영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