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30인전투 三十人戰鬪, Battle of the Thirty
    프랑스 왕의 지원을 받는 블루아의 샤를과 잉글랜드 왕의 지원을 받는 몽포르의 장이 브르타뉴 공작령 계승권을 놓고 벌인 전쟁중의 한 전투(1351. 3. 27). (프). Combat des Trentes.|전투를 묘사한 작자미상의 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장 프루아사르도 이 전투를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플로에르멜의 잉글랜드군 ...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세계사
  • 테라메네스 Theramenes
    대한 여론을 나쁜 쪽으로 유도했다. 그 가운데 6명의 군사위원들은 전투중 파괴된 선박에서 탈출한 군인들을 구하지 않아 직무를 태만히 했다는 비난을 받고...그후 그는 스파르타에 대한 항복 조건을 협의할 대표단을 이끌었다. 테라메네스는 보통 '30인 참주'로 불리는 '30인 집행부'를 이끈 지도적 위원이었다. 이...
    출생 :
    미상
    사망 :
    BC 404/403, 그리스 아테네
    국적 :
    그리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정치가
  • 르파임 골짜기 전투
    예루살렘 전투에서는 여부스족들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수도이자 중심지로 정했다. 이에 자극받은 이웃 나라 블레셋족들은 다윗을 잡기 위해 온 군사를 모아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다윗은 블레셋족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 산성으로 내려갔다. 그때 블레셋족들이 르파임 골짜기에 도착해 널리 퍼져...
    도서 위키백과
  • 리산드로스 Lysandros
    맡았으나 실제로는 스파르타군을 지휘해 BC 405년 9월 아이고스포타미 전투에서 아테네 함대를 격파했다. 이 때문에 헬레스폰토스(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을...굶어죽게 된 아테네는 항복했다(BC 404. 4). 리산드로스는 아테네에 '30인 참주'라는 과두제 확립을 부추겼으며 아테네의 동맹국들은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출생 :
    미상
    사망 :
    BC 395, 보이오티아 할리아르토스
    국적 :
    그리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정치가
  • 그리스 지배를 위한 패권 다툼, 펠로폰네소스 전쟁
    3~4천의 아테네 병사들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아테네가 아이고스포타미 전투에서 패한 뒤, 델로스 동맹국은 아테네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결국 재정적으로...스파르타에게 인도하고, 델로스 동맹을 해산하였다. 또 리산드로스의 압력으로 ‘30인 정치(과두 정치)’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생 :
    기원전 431년
    종결 :
    기원전 404년
  • 시글락 Ziklag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시글락 전투는 다윗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윗은 전투에서 승리한 뒤 베텔, 라못 네겝, 야티르, 아로에르, 시프...아즈마웻의 아들 여지엘과 펠렛, 브라카, 아나톳 사람 예후, 30인 부대의 용사 기브온 사람 이스마야, 이르므야, 야하지엘, 요하난, 그데라 사람 요자팟...
    도서 위키백과
  • 고려-거란 전쟁 Goryeo–Khitan War, 契丹の高麗侵攻
    거란에 대해서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 부르고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북진 정책을 실행하였다. 942년 요 태종이 낙타 50필을 보내자 고려 태조는 사신 30인은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萬夫橋)에서 굶겨 죽여버렸다. 이는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취해졌고, 그 뒤에도 계승되어 고려 정종 때에는 광군(光軍...
    도서 위키백과
  •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총동원한 전투였다. 그러니 비록 승리했어도 아테네는 이득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입었다. 이때 스파르타도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강화를 청했으나 아테네는 끝내 거부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테네는 점차 국력이 약해지면서 붕괴의 길로 가고 있었다. 리산드로스가 이끄는 스파르타 해군은 전열을 가다듬어...
    도서 이야기세계사1 | 태그 세계사
  • 트라시불로스 Thrasybulos
    죄로 고발당하자 그를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BC 404년 아테네의 과두체제인 30인 참주의 조치에 따라 망명길에 오른 그는 테베로 돌아가 은퇴했다가 이듬해에...403년 가을 파우사니아스 왕이 이끄는 스파르타의 원정군과 소규모 전투를 몇 번 치른 뒤 화해 협정이 체결되었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다시 살아났다...
    출생 :
    미상
    사망 :
    BC 388
    국적 :
    아테네, 그리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세계사 , 고대
  • 배시황전 裵是愰傳
    하고 30인만이 살아 돌아온다. 유년에 청나라가 또 원병을 요청해 오자, 조선은 육진 군사 5,000인을 징발하고 신유(申瀏)를 장수로 배시황을 비장으로 삼아 출병하게 한다. 배시황은 길주 · 명천 등 아홉 군현을 순행하여 정병 5,000인을 모집하여 신유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발행한다. 일행은 영고탑(寧古塔)에서...
    시대 :
    조선
    유형 :
    작품/문학
    분야 :
    문학/고전산문
  • 파우사니아스 (스파르타) Pausanias (king of Sparta), パウサニアス ..
    했지만, 30인 정권으로부터 손을 떼고 아테네 당파 항쟁을 중재했다. 크세노폰은 이전부터 대립하고 있던 리산드로스 장군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다고 밝혔고...때에 파우사니아스와 리산드로스가 각각 군을 이끌고 보이오티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 부대가 늦었기 때문에, 리산드로스 부대는 할리아르토스 전투
    도서 위키백과
  • 아기스 2세 Agis II, アギス2世
    중요한 전투로 여겨진다. 기원전 417년, 아르고스의 공화국파가 친 스파르타의 과두파를 습격해 그들로부터 정권을 탈취했다. 공화국파는 스파르타군의 내습에 대비해 장성을 구축하고, 아테네와 손을 잡고자 했다. 아기스의 지휘 하에 스파르타 동맹군과 함께 아르고스로 향했다. 그들은 아르고스를 함락시키는...
    도서 위키백과
이전페이지 없음 현재페이지1 2 다음페이지 없음

멀티미디어1건

30인전투(Battle of the Thirty)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