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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황권의 몰락, 아비뇽 유수 (관련어 필리프 4세)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전을 주창하고, 1096년에 제1차 십자군이 파견되었다. 1378년 아비뇽에서 로마로 교황청이 복귀한 후 이탈리아 인 우르바노 6세가 새 교황에 선출되자 프랑스 추기경들이 프랑스 출신인 클레멘스 7세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했다. ‘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200년 가...
- 시대 :
- 13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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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4세의 중기생애잉글랜드 및 플랑드르와의 전쟁 필리프의 통치 초기에 아라곤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는 왕국 행정을 개혁하고 합리화하려는 전임자들의 노력을 강화했다. 그는 감사관을 파견하여 왕이 임명한 관리들의 행실과 왕의 특권에 대한 침해를 조사하게 했다. 필리프가 이런 개혁을 끈질기게 추구한 것은 왕가의 지위를 강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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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4세의 후기생애유대인과 성전기사단에 대한 박해 아내를 잃은 뒤 필리프는 곧 슬픔에서 벗어나 하느님에 대한 헌신을 증명하는 동시에, 오랫동안의 전쟁으로 궁핍해진 왕국에 물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1306년에 그는 모든 유대인을 프랑스에서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은 물론 갚아야 할 돈까지 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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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파시오 8세의 필리프 4세필리프 4세는 대칙서가 발표된다는 소식을 듣고 돈과 귀중품들이 프랑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외국상인들을 추방함으로써 이 교서의 발표에 반발했으며, 심지어 칙서의 발표를 지연시켰다. 이런 조치들은 교황청 수입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는 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1년 동안 프랑스 왕에게 대칙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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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4세의 초기생애같은 해에 샹파뉴와 나바라의 여자 상속인인 2세 된 잔(후아나)이 프랑스 궁정에 망명자로 받아들여졌다. 왕의 자녀들과 함께 자란 잔은 12세 때 미래의 필리프 4세의 신부가 되었다. 1276년에 형 루이가 죽자, 필리프는 하루 아침에 왕세자가 되었는데, 이 사건의 충격은 계모가 전처의 아들들을 죽이려 한다는 의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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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 필리프 4세, 최초 삼부회 개최교황과의 무력 대결을 준비(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지다 참조)하고 있던 필리프 4세가 왕에 대한 국가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삼부회를 열었다. 삼부회란 성직자, 귀족, 그리고 평민의 대표로 구성된 일종의 의회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평민 대표인데, 당시 농촌의 대부분은 귀족들이 장악했으므로 평민 대표는...
- 시대 :
- 1302년
- 국가/대륙 :
- 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