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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Louis the Pious, ルートヴィ..왕족 정보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는 814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동프랑크의 왕이다. 본래 게르만어식 이름이 "클로도비크"였지만 그의 생전 라틴어로 이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되어 "클로도비쿠스"가 아닌 "흘로도비쿠스(또는 루도비쿠스)"가 되었고, 이것이 독일어의 루트비히, 이탈리아의 로도비코...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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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령정부시대의 나폴레옹 1세개인적으로 종교에 무관심했지만 사람이란 종교를 필요로 하며 프랑스에 종교적 평화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1796년 이탈리아에서 교황 피우스 6세와 휴전조약을 맺을 때, '성직자공민헌장'(Civil Constitution of the Clergy)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교황이 프랑스 성직자들에게 내렸던 경고서한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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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시대의 나폴레옹 1세교황 피우스 7세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마지막 순간에 황제는 교황에게서 황제관을 건네받아 손수 자기 머리에 썼다. 1804년 나폴레옹 집안 사람들에게 황족(皇族) 칭호를 내렸고 1808년에는 제국의 작위(爵位) 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반발이 있었으므로 선전을 강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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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정부시대의 나폴레옹 1세계속 싸워 밀라노를 점령했으나 만토바에서 더 나가지 못했고 그의 군대가 만토바를 포위하고 있는 동안 그는 파르마 공(公), 모데나 공, 교황 피우스 6세를 상대로 휴전을 맺었다. 한편 그는 이탈리아 정치조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부오나로티가 중심인 이탈리아 '애국자'들은 이탈리아를 '공화국'으로 만들려 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