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서 켄터키 출신의 존 J. 크리튼던 상원의원이 남북전쟁을 막기 위해 1860년 12월 의회에서 제안했으나 무위로 끝난 일련의 의안.|그가 구상한 6개의 헌법수정안에 따르면 우선 1820년의 미주리 타협을 사실상 다시 법규화하고, 더 중요한 것으로 그 적용 범위를 태평양 연안까지 확대하며 연방정부가 노예 ...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남부와 북부간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한 시도로서 이른바 크리튼던타협안을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윌리엄앤드메리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학업을 마친(1807) 지 2년 만에 일리노이 준주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1812년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켄터키로 돌아와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
의원에 입후보하여 당선했다. 그 직후 민주당에 들어갔으나 1860년까지 주권문제에 대해서는 온건한 입장을 유지했다.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 당선하고 크리튼던타협안이 실패로 돌아가자 툼스는 공개적으로 남부 주들의 연방탈퇴를 주장했다. 그는 조지아 탈퇴회의의 대표로 일했고, 남부연합을 세운 몽고메리 회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