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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of Crécy 크레시 전투, クレシーの戦いThe Battle of Crécy, also called Battle of Cressy, was an important English victory during the Edwardian phase of the Hundred Years' War. Coupled with the later battles of Poitiers (also fought during the Edwardian phase) and Agincourt, it formed the first of three decisive English successes dur...출처 영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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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시전투 발발수적으로 월등한 프랑스 기사들을 물리쳤다. 잉글랜드군에게 무작정 돌격하던 프랑스 기사들은 갑옷을 뚫어 버리는 장궁의 위력 앞에 참패하고 말았다. 크레시전투는 기사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 장궁과 석궁 등 신무기가 등장하고 새로운 전술들이 개발되자 평민으로 이뤄진 군대도 기사들에게 얼마든지 맞설 수...
- 시대 :
- 1346년
- 국가/대륙 :
-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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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의 지배를 꿈꾸는 에드워드 3세의해 책임있게 훈련된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장궁부대의 활약이었다. 이런 잉글랜드군의 장궁부대 활약은 크레시 전투와 푸아티에 전투에서도 확실하게 보여진다. 1345년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맏아들인 흑태자 에드워드와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하였다. 이듬해 잉글랜드군은 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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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 백 년 전쟁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 군대는 신무기인 큰 활을 가진 보병대(장궁대라고 불림)로 맞선 영국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 크레시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칼레로 진격하여, 칼레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1347년에 그곳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럽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페스트...
- 발생 :
- 1340년
- 종결 :
- 1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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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차례 휴전이 있었고 어떤 때는 20년 동안이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도 했지만 전쟁의 주도권은 영국이 쥐고 있었다. 학자들은 크레시 전투(1346년), 프와티에 전투(1356년), 아쟁쿠르 전투(1415년)에서 적어도 프랑스 군인 1만 6,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기사였다. 더구나 1420년에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