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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작농업 小作農業, tenant farming
    지주가 자신의 토지와 자본을 투자하여 관리하고, 소작인은 이러한 자본과 관리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업체제. sharecropping이라고도 함.|수익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분된다. 지주에게 주는 지대는 생산물이나 현금 또는 이 둘을 섞어서 줄 수도 있다. 소작농 및 그 가족은 전세계 농업 인구의 2/5 정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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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작제도
    농정을 추진함으로써 더욱 강해졌다. 그 과정에서 조선 후기 이래 성장해가던 소작권은 약화되고 지주들의 권한은 강화된 한편, 자작농의 소작농화와 소작농의 궁핍화, 나아가 농업노동자화가 전개되었다. 특히 한말 이래 침투해온 일본인자본가들의 농장경영은 소작관계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 시기 소작관행에서는...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경제
  • 소작제도 小作制度
    소작제도로 전개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던 화폐·상품의 유통과 도시근교를 중심으로 한 상업적 농업의 성장의 영향하에, 소작제도 내부에서도 신분제도의 붕괴과정과 더불어 봉건성 분해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876년의 개항 후 더욱 급속해진...
    시대 :
    고대/삼국
    유형 :
    제도
    분야 :
    사회/사회구조
  • 용천불이서선농장소작쟁의 龍川不二西鮮農場小作爭議
    의 경우, 탄원서 제출 등 진정활동으로 전개되었으나, 근본적 요구사항이 식민권력 앞에 무산됨에 따라 후기(3·4·5차)부터는 자신들이 조직한 용천소작조합을 중심으로 식민농업회사와 일제식민권력에 맞서 불경·단식투쟁, 집단시위와 농성, 그리고 폭력항쟁 등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작인의 항쟁도 일제...
    시대 :
    근대
    발생 :
    1925년 1월(1차), 1926년 말(2차), 1928년 말(3차), 1930년 봄(4차), 1931년 11월(5차)
    성격 :
    농민항쟁
    유형 :
    사건
    종결 :
    1932년 2월 24일
    분야 :
    역사/근대사
    관련 장소 :
    평안북도 용천 불이서선농장
  • 소작쟁의 小作爭議
    점차 시위항쟁은 거세게 폭력투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또 계급적으로 같은 노동자의 노동쟁의와 연대투쟁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투쟁대상으로는 일제식민농업회사와 일본인 식민지 지주에 대한 쟁의가 많았고, 식민지 지주는 한국인도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미 이 시기의 소작쟁의는 단순한 경제투쟁이 아니라...
    시대 :
    근대
    유형 :
    개념용어
    분야 :
    사회/사회구조
  • 암태도 소작 쟁의 대지주의 수탈과 일제의 식민지 억압에 대항한 농민운동
    부담해야 했다. 특히 1920년대 전반기 농민들은 높은 소작률과 불안정한 소작권, 과중한 공과금 부담 등으로 대지주를 상대로 생존권 투쟁에 나섰고, 이것이 소작 쟁의 형태로 표출됐다. 소작권의 불안정은 지주들이 소작 기간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소작권 이동을 수탈 수단으로 삼으면서 발생했다...
    시대 :
    1923년
  • 김해하자마농장소작쟁의 金海迫間農場小作爭議
    러일전쟁 당시 군용지 매입을 중개, 자본을 축적한 대판(大阪) 상인 하자마가 1928년 김해에 설립한 소작제 농장이었다. 총면적 2,800정보로서, 2천 호의 소작농가가 소속되어 있었다. 하자마농장 농업경영의 특징은, 소작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중간관리인인 간사(幹事)들에게 소작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소작료 1석당 13...
    시대 :
    근대
    발생 :
    1931년 10월
    성격 :
    농민항쟁
    유형 :
    사건
    종결 :
    1932년 2월
    분야 :
    역사/근대사
    관련 장소 :
    경상남도 김해 하자마농장
  • 황주조선흥업주식회사소작쟁의 黃州朝鮮興業株式會社小作爭議
    식민농업회사와 달리, 주로 밭을 경영하여 콩·면화를 수탈하였다. 황주농장은 조선흥업의 가장 큰 수탈농장으로 1905년에 설립되었고, 규모는 소유토지가 8,367정보(논 670정보, 밭 7,375정보, 기타 322정보)이고 소작농은 4,869호였다. 따라서, 조선흥업은 황주에 지점을 두고, 지점장을 최고관리자로 하여 농장을...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발생 :
    1924년 2월 19일
    성격 :
    농민운동, 소작쟁의
    유형 :
    사건
    종결 :
    1924년 3월 23일
    분야 :
    역사/근대사
    관련 인물/단체 :
    조선흥업주식회사
    관련 장소 :
    황해도 황주
  • 옥구 이엽사농장 소작쟁의 沃溝 二葉社農場 小作爭議
    시라세이(白勢春三)와 시라세이(白勢量作)가 1926년에 설립한 전형적인 식민농업회사로서 본점을 전주에 두었다. 1927년경 이엽사는 전주의 삼례농장, 익산군의...농장(川崎農場)을 인수한 것으로서, 이 옥구농장에서 1927년 11월 소작쟁의가 발생하였다. 그 원인은 7.5할이라는 고율의 소작료에서 비롯되었다. 경과...
    시대 :
    근대
    유형 :
    사건
    분야 :
    역사/근대사
  • 불이농장 소작쟁의 不二農場小作爭議
    들어서는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이곳 소작인들도 제방쌓기·도로닦기 등 농업 외 부역에 동원되어야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상당수의 소작농들이 소작료를 납부할...상태에 빠졌는데, 그때마다 회사측은 소작권 박탈로 대응했다. 불이농장 소작쟁의는 1925년 용천군 부라면 지역의 소작농 400여 호가 집단적으로 소작권을...
  • 한국의 농업
    전환시켜 농업근대화를 이루고,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려는데 있었다. 농지개혁의 실시로 구래의 반봉건적 지주소작관계는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저급한 농업생산력과 농민경제의 영세성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농업생산력 우리나라 농업생산력의 전개과정은 수도작(水稻作)에서의 생산력 발전...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경제
  • 농민운동 농민 전쟁, 農民運動
    적정화 등 파쇼적 농본주의적 이념과 행정조직을 총동원해 농촌사회를 장악해갔다. 8·15해방 후의 농민운동 8·15해방 직후 농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에 따라 피폐된 농촌사회를 전면적으로 개조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출발했다. 반(半)봉건적인 지주소작관계가 여전히 농촌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전...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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