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교단인 사파위 교단의 창시자.|지방 통치자 가문의 후예로서 어린시절 아르다빌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은 중앙정부가 하사한 땅, 즉 속령지(屬領地)로서 그의 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뒤 시라즈에서 수피(신비주의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으며, 다시 길란 지역(이란 카스피 해 연안지역)에 가 그곳에...
못해 지역 통치자들간에 싸움이 끊임없이 계속되다가 1220년 몽골족에게 정복되면서 파괴되었다. 그후 13세기 사파위 왕조가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셰이크 사피옷딘이 이곳을 자신이 이끄는 수피교 수도회의 중심지로 만들면서 다시 중요성을 되찾았다. 사파비 왕조의 기념지가 된 이 도시는 특히 사파비 통치자들이...
사파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은 몽골 이교도들에게 이슬람교가 모독당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여 수피 종단 내의 한 종교운동을 일으킨 셰이크 사피옷딘의 후예였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종교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있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이슬람교도 사회를 지배하고자 하는 시아파의 열망을 대변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가진 이 나라에서 통일된 국가의식을 불러일으킨 주요요인이 되었다. 사파위 왕조는 사파위야 수피 교단의 우두머리인 아르다빌의 세이흐 사피옷딘(1253~1334)의 후예들이지만 1399년경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바꾸었다. 왕조의 창시자인 이스마일 1세는 아르다빌 수피 교단의 우두머리로서 이...
퍼져나갔다. 그중에서 역시 가르침이 엄격한 전통 할와티야는 우마르 알 할와티가 이란에 세웠고, 그뒤 많은 분파가 생겨 터키와 이집트로 퍼졌다. 사피옷딘이 이란 아르다빌에서 조직한 사파위야는 이란의 사파위 왕조(1501~1736), 16세기초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활동한 투르크의 여러 분파들을 일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