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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고로(미우라 공사) Miura Goro일본의 군인으로 을미사변의 배후 조종자이다. 1895년 삼국 간섭으로 조선에서 일본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고종과 명성 황후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친일 내각을 무너뜨리고 친러 내각을 구성하자, 이노우에 가오루의 후임이 되어 특명 전권 공사로 조선에 왔다. 같은 해 10월 8일 일본인 자객을 앞세우고 경복궁...도서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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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 을미사변 乙未事變위한 작전에 붙인 이름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10월 3일(음력 8월 15일) 남산의 일본 공사관 밀실에서 마련됐다. 육군 중장 출신의 암살 전문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공사로 부임한 지 한 달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전임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시해를 주모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과격한 성격의 미우라를...
- 시대 :
-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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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明成皇后삼국간섭에 의해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였다. 이때 명성황후는 러시아에 대한 접근을 통해 군주권 회복을 추구하였고, 조선 보호국화가 좌절된 일본정부는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를 주한공사로 파견하였다. 이처럼 내외의 격동 속에 고종을 적극 내조해 왔으나, 이로부터 한 달 여 뒤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경복궁을 습격...
- 유형 :
- 인물/근현대 인물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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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 〈을미사변〉조선 내부는 물론 미국, 러시아 등도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은 흥선대원군을 꼭두각시로 세운 후 '을미사변은 흥선대원군과 훈련대가 한 일'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반발이 더 거세지자, 주모자인 미우라 고로 공사를 비롯한 48명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옥에 가뒀다. 일본은 이듬해 이들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참조
- 시대 :
- 1895년 8월 20일
- 국가/대륙 :
-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