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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 (신성 로마 황제) Louis IV, Holy R..루트비히 4세(Ludwig IV, 1282년 ~ 1347년 10월 11일)은 1294년부터 1301년까지 바이에른의 대공이었고 1314년부터 독일의 왕이었다. 1328년부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별칭은 바이에른인(der Bayer). 독일의 국왕으로는 루트비히 5세로 불린다. 비텔스바흐가 출신의 루트비히는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처음 독일...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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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의 초기생애팔라틴 백작이며 상바이에른 공작이던 루트비히 2세의 둘째 아들로 혈통상으로는 왕위 계승권이 없었다. 1294년 아버지가 죽자 11세의 루트비히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루돌프 1세의 딸인 어머니 메히틸트와 당시 20세였던 형 루돌프의 보호를 받았으나 이내 정치 암투에 휩쓸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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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의 황제 즉위1326년 2월 레오폴트 공작이 죽자 루트비히는 대담하게 이탈리아 본토 내에서 교황청에 맞섰다. 기벨린(황제파)의 지지를 받아 1327년 5월 31일 밀라노에서 롬바르디아의 철왕관(鐵王冠)을 받아 썼으며, 1328년 1월 11일에는 로마에서 로마의 평민 대표들이 주는 황제의 관을 받아들였다. 이같은 이례적인 행동은 교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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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와 합스부르크 분쟁루트비히에게 가장 긴박했던 문제는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분쟁이었다. 1322년 9월 28일 뮐도르프에서 벌어진 전투 때 승리한 루트비히는 프리드리히 왕과 그 형제들을 포로로 붙잡았다. 1323년 4월 그는 당시 미성년인 큰 아들 루트비히에게 1319년부터 미결정 상태로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의 지배권을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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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와 티롤 문제변경지방의 리에주와 캉브레의 주교구(主敎區)를 제외한 제국의 모든 성직자들이 그의 통치에 복종하고 잉글랜드가 지원 의사를 비치자 루트비히는 나름대로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교황을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1339년 9월 1일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1340년 1월 27일 겐트에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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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4세 폰 헤센 대공 Louis IV, Grand Duk..1953년 11월 11일(87세)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와 결혼, 3남. 에른스트 루트비히 1868년 11월 28일 1937년 10월 9일(68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알릭스 1872년 6월 6일 1918년 7월 18일(46세)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결혼, 1남 4녀. 마리아 1874년 5월 24일 1878년 11월 16일(4세) 요절. 전거 통제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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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Louis the Child, ルートヴィヒ4世 (東フ..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슈바벤과 바이에른, 작센은 거의 반 독립화되어 스스로 자립하였다. 그 외에도 13세기에 루트비히 4세가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 프로방스 출신으로 900년에 황제가 된 루트비히 3세에 이은 루트비히 4세이다. 루트비히 4세는 독일의 군주로는 루트비히 5...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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