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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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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0. 2. 2, 충남 천안
사망 1990. 10. 8, 서울
국적 한국

요약 한영숙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무 예능보유자이다. 한국 전통무용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렸으며, 후진 양성을 위해 힘썼다.
민속춤의 대가인 한성준의 손녀로, 11세에 상경하고 13세부터 춤을 배웠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양금과 해금을 익혔으며, 승무·검무·살풀이춤·바라춤·태평무·한량춤·학춤 등 많은 전통춤들을 배웠다. 이후 국내 뿐 아니라 일본, 만주 등으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1946년 한영숙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여러 무용단과 대학에서 강사와 교수로 일하며 후학을 지도했다. 국가사절단으로서 여러 중요 행사에서 공연해 국위를 선양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에서 살풀이춤을 추어 한국춤의 진수를 세계에 알렸다.

호는 벽사(碧史).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무 기·예능보유자. 민속춤의 대가인 한성준(韓成俊)의 손녀이며, 아버지는 한희종이다. 9세에 홍성 갈미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1세에 큰할아버지인 한성준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서 13세부터 춤을 배웠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양금과 해금을 익혔으며, 승무·검무·살풀이춤·바라춤·태평무·한량춤·학춤 등을 배웠다.

1935년 7월 부민관에서 무용발표회를 가졌으며, 이후 일본 공연, 만주·북지 일대 순회공연, 황해도·평안도·함경도 등지의 순회공연을 다녔다. 1942년 한성준이 죽은 후 예술단체에 들어가 일본을 비롯한 만주지방과 전국순회공연을 가졌다. 1944년 황병렬(아코디언 연주자)과 결혼했다. 1946년 한영숙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해 후진을 양성했으며, 한국국악예술학교(지금의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서라벌예술대학·이화여자대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서울시립무용단·수도여자사범대학 등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그외 국가사절단으로서 일본 오사카[大阪] 엑스포 70 때 한국관에 출연, 1972년 삿포로[札幌]동계 올림픽 대회 민속예술단으로 참가, 뮌헨 하계 올림픽 대회 민속예술단 참가, 1975년 8·15 30주년 기념 일본 순회공연 및 오키나와[冲繩] 해양박람회 내셔널데이 공연 등에 참가해 국위 선양을 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 폐막식 공연에서 살풀이춤을 추어 한국춤의 진수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196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70년 서울신문사 제3회 문화상, 1970년 국민포상 대통령상, 1971년 제3회 문화예술상, 1973년 훈장 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승무·학춤·태평무·살풀이춤은 마치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품격과 멋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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