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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시리아 중부 힘스 주 타드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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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 중동 |
국가 | 시리아 |
참고 | 유네스코 세계 유산, 문화 유산(1980) |
요약 고대 시리아의 도시. Tadmur, Tadmor, Tudmur라고도 함.고대 로마의 식민지로 오랜 유적이 많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문화 유산. 기준 Ⅰ, II, Ⅳ)
지금의 시리아 힘스 주에 있었다. 팔미라라는 이름은 셈어가 사용되기 이전의 이름인 타드무르, 타드모르, 투드무르의 그리스어·라틴어 형태이다. 129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방문한 후 자유시(civitas libera)가 되었다.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 식민도시(colonia)의 지위를 얻어 세금이 면제된 후 3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227년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파르티아인들을 몰아내고 사산 왕조가 들어서자 곧 팔미라의 교역로인 페르시아 만으로 가는 길이 폐쇄되었다. 270년 팔미라 군대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역을 대부분 정복하자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272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 아나톨리아와 팔미라는 다시 로마에 종속되었다. 그후 계속 다마스쿠스와 유프라테스를 잇는 포장 도로였던 스트라타디오클레시아나의 주요 연결지 역할을 하던 팔미라는 634년 초대 이슬람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632~634 재위)의 명을 받은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에게 정복되었다.
팔미라의 언어는 아람어였으며 동방과 서방 사이에 있는 도시의 위치를 반영하듯 문서체와 메소포타이마 흘림체 등 2개의 문자 체계가 있었다. 팔미라 관세표로 알려진 2개의 언어로 쓴 큰 서판과 위대한 대상 지도자들의 조상 밑에 새겨진 명판을 통해 대상의 조직과 팔미라 교역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팔미라인들은 페르시아 만을 거쳐 인도와 교역했으며 나일 강의 콥토스, 로마, 시리아의 도우라에우로푸스 같은 도시들과도 거래했다.
팔미라의 아람족이 섬기는 주요신은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볼(바알 신인 듯함)이었으나 곧 역시 별의 운행과 관련이 있는 바빌로니아의 벨 마르두크 신과 동일시됨으로써 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팔미라인들은 주신 벨과 태양신 야르히볼 및 달의 신 아글리볼을 관련지어 생각했다. 그외에도 '하늘신'이며 하다드와 거의 같은 페니키아의 바알 샤멘을 중심으로 한 세 신들이 신봉되었다. 2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이름이 영원히 축복을 받을 자비롭고 선하신' 이름 없는 신에 대한 숭배와 함께 일신론적 경향이 나타났다.
팔미라 유적들을 보면 고대 도시의 도로망 계획이 명확히 드러난다. 동서로 뻗은 중심가에는 거대한 진입로 시설과 함께 분수·조각·꽃밭 등이 설치된 3개의 공원이 있으며 남쪽에는 광장·원로원·극장이 있다. 다른 유적으로는 '디오클레시아누스의 진지'라고 하는 거대한 복합 건물과 벨·야르히볼·아글리볼을 모신 팔미라인들의 성소가 있다. 건축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유물에서 코린트식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와 이란의 영향도 분명히 발견된다.
고대 팔미라 유적지에 세워져 있는 지금의 타드무르 시는 시리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란의 키르쿠크와 레바논의 트리폴리를 잇는 송유관이 지난다. 팔미라 유적지는 1980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문화 유산. 기준 Ⅰ, II,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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