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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우스 막시무스 쿵크타토르

다른 표기 언어 Quintus Fabius Maximus Cunctator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BC 203
국적 로마

요약 로마의 군사령관·정치가.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 초기 단계에 신중한 지연 전술(그래서 그의 성에 '꾸물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쿵크타토르가 덧붙었음)을 써서, 로마가 힘을 회복하여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침략군에 대해 공세를 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

파비우스주의는 점진적이거나 신중한 정책을 의미하게 되었다. 파비우스는 BC 233, BC 228년에 콘술(집정관)을 지냈고, BC 230년에는 켄소르(감찰관)로 일했다. 그는 한니발이 스페인의 사군툼(지금의 사군토)을 점령한 데 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기 위해 BC 218년 로마 사절로 카르타고에 간 듯하다. 한니발이 트라시메네 호에서 로마군을 무찌른 뒤(BC 217), 파비우스는 딕타토르(독재관)로 선출되었다. 그후 그는 지구전으로 침략군을 지치게 하는 지연 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한니발의 기병대가 힘을 쓸 수 없는 구릉 지대에서 작전을 벌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한니발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파비우스의 전술은 로마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기병대장인 미누키우스 루푸스와의 논쟁을 초래했다. 그러자 로마 시민은 미누키우스와 파비우스에게 지휘권을 분배했다. 파비우스는 적을 지치게 하는 지연 전술에 충실하여, 한니발이 캄파니아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을 방임했다. 그의 딕타토르 임기가 끝나자, 로마인들은 다시 침략군을 섬멸하려고 했다. 그결과 로마는 칸나이에서 참패를 당했고(BC 216), 로마인들은 파비우스의 지연 전술을 다시 도입했다. 3번째(BC 215)와 4번째(BC 214)로 콘술에 선출된 파비우스는 캄파니아에서 군대를 지휘했다. BC 209년에 5번째로 콘술이 된 파비우스는 한니발이 3년 동안 점령하고 있던 타렌툼(지금의 타란토)을 탈환했다. 파비우스는 아프리카 침략(BC 205)을 준비하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12년 동안 최고 신관으로 일했고, 62년 동안 아우구르[卜占官]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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