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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28년,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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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83년, 폴란드-리투아니아 |
국적 | 러시아 |
요약 러시아군 사령관.
1540, 1550년대 대제 이반 4세의 측근이며 자문을 맡았다. 스몰렌스크야로슬라블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1547년 이반 4세가 국내개혁과 외교정책 수립에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든 특별 자문위원회에 깊이 관여했다. 21세 때 차르의 궁내관이 되었고 1549년 카잔의 칸[汗]을 공격하는 원정에 참가함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
1552년 도시를 공격하던 중 상처를 입었지만 그뒤 카잔을 새롭게 정복하여 러시아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데 일익을 맡았다(1553~56). 이 기간에 쿠르프스키는 차르의 가까운 측근이 되었으며 1553년에는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당시 중병에 있던 차르 이반에게 어린 황태자(표도르)를 후계자로 지원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충성심을 과시했다.
1556년 귀족서열상 통치 왕족 바로 밑의 보야르로 승격했다. 1556년 남쪽에서 크림 타타르와 싸움을 치른 뒤 이반에 의해 리보니아 정복을 위한 전투의 사령관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되어 서부전선으로 파견되었다(1557). 그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1563년 이후로 이반의 총애를 잃고 실질적으로는 타르투에 감금당했다.
재임명을 받지 못하게 되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기스문트 2세 진영으로 달아났다(1564. 4. 30). 지기스문트 왕은 그에게 많은 토지를 하사하고 군대 지휘를 맡겨 이반과 싸우도록 했다(1564. 9). 후에는 가톨릭교도와 프로테스탄트의 침해로부터 리투아니아의 그리스 정교도를 보호했다. 이외에도 종교적인 저술을 남겼으며 이반의 공포정치를 공격하는 〈모스크바 대공의 역사 Istoriya o velikom knyaze moskovskom〉를 쓰기도 했다. 그가 쓴 편지들도 역시 재미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도주 후에 이반에게 쓴 편지이다. 그의 서한으로 미루어볼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각 공국의 독립된 지배자였던 러시아 귀족들이 쿠르프스키의 목소리를 빌려 이반 황제의 절대전제주의적 정치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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