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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1(고종 28), 함남 홍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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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2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재일본 조선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본관은 전주. 호는 당남(塘南).
서울 오성중학교(五星中學校)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과에 입학했다. 재일유학생단체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특히 조선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 〈학지광 學之光〉의 주필을 맡아 진보적 논조로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18년 12월 백관수(白寬洙)·김도연(金度演)·송계백(宋繼白)·윤창석(尹昌錫) 등과 함께 유학생 중심의 자주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김규식(金奎植)의 파리 강화회의 파견을 적극 지지했다. 1919년초 도쿄[東京]에 온 이광수(李光洙)에게 선언문을 작성하게 하고 송계백을 국내 연락책으로 파견하여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 등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정노식(鄭魯湜)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
같은 해 2월 8일 오후 2시 도쿄 기독교청년회(YMCA) 회관에서 학우회 총회 명목으로 유학생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재일본동경조선독립청년단(在日本東京朝鮮獨立靑年團) 발족을 선언하고 백관수·김도연이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했다. 선언 직후 가두시위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9개월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생활했으나 계속된 일제의 감시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한 채 병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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