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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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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3. 5. 22, 경기 화성

요약 한국의 축구 선수·감독·해설가. 차범근은 한국 최초로 축구의 본고장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명성을 떨쳤다. 1972년 19세의 어린 나이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대학 재학 중에는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국내외의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1989년 308게임, 98골이라는 당시 외국인 선수 최고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1996년 제1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게 6-2로 대패하면서 위기를 맞은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8년 제16회 프랑스 월드 컵 대회 본선진출을 이끌었지만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패배한 후 해임되었다. 이후 K리그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발언으로 파문이 일어나 차범근은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자격 정지 기간이 만료된 후 200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에 취임한 그는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으나 2010년 성적이 부진하자 사임하고 해설가와 축구 행정가로 활동했다.

차범근(車範根)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 현재 축구 지도자, 해설가,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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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축구선수·감독·해설가. 차범근은 한국 최초로 축구의 본고장인 서독(지금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명성을 떨쳤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해 경신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는 유망주로 촉망받았다. 그는 또한 1972년 19세의 어린 나이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며 고려대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국내외의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1979년 그는 분데스리가의 스카우트 교섭을 받고 서독 SV 다름슈타트 팀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곧바로 아인트라트 프랑크푸르트 팀으로 이적하고 그해 팀을 유럽축구연맹(Union of European Football Association/UEFA) 컵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1983년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했고 1988년 다시 한번 UEFA 컵에서 우승했다. 1989년 차범근은 308게임, 98골이라는 당시 외국인 선수 최고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차범근은 1991년부터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았다. 1996년 12월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게 6-2로 대패하면서 최악의 상태가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차범근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차범근은 결국 1998년 제16회 프랑스 월드 컵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패배한 후 해임되었다. 이후 그는 중국 핑안 팀의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K리그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그의 발언으로 파문이 일어나자 차범근은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차범근 축구교실에 전념하며 야인 생활을 하다가 2001년 MBC 축구해설위원을 맡아서 활동했다. 차범근은 200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에 취임했다. 그는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정규리그 2위의 성적을 올렸으며, 2008년에는 우승컵을 안았다. 2009년 시즌부터 부진이 계속되자 2010년 6월 감독직을 사임했고, 이후 방송사의 축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2016년 4월에는 '2017 FIFA 20세 미만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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