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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6. 2. 14, 전남 광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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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09 |
국적 | 한말, 한국 |
요약 한말 의병.
일명 준환(準煥). 자는 서암(棲巖), 호는 대천. 아버지는 병원(秉元)이다.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1907년 12월 광주·함평 등지에서 김원오(金元五)·김동수(金東洙)·양상기(梁相基) 등과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 의병진의 좌익장(左翼將)이 되었다.
12월 14일 새벽 함평의 일본군을 습격하여 다수를 생포하고 무기를 노획했으며, 그날밤 학포에 주둔한 일본 기병대를 습격했다. 그후 김박사 의진 및 이진사 의진과 합세하여 세력을 키워 선봉장이 되었다. 12월 27일 영광군 사창을 습격하여 군량을 확보했다. 1908년 1월 1일 창평의 무동촌(舞童村)에 잠복해 내습하는 일본 헌병대를 맞아 싸워 대장 요시다[吉田] 이하 수명을 체포·사살했다. 3월 7일에는 영광의 토산에서 교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불갑사(佛甲寺)로 후퇴했다. 3월 25일 의진을 둘로 나누어 그중 한 부대를 이끌고 광산군 어등산(魚登山)에서 일본군과 접전했으나 참패를 당하고 함평에 은신했다.
그후 재기하여 호남창의대장이 되어 각지 향교에 수차례 격문을 발송하는 한편, 흑석리로 가서 경찰대와 교전한 끝에 수명을 생포했다. 10월에는 오수산(烏首山)·석문(石門)·대치(大峙)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1월 25일에는 전해산(全海山)·유완요(柳完堯)·김여효(金汝孝) 등의 의병군과 합세하여 일본군을 무찔렀다. 1909년 1월 10일 설을 쇠도록 다수의 의병을 귀향시키고 수명의 막료와 같이 어등산에 은신하고 있다가 정보를 입수한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당해 교전중 전사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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