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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다른 표기 언어 Christchurch earthquakes of 2010~11 동의어 캔터베리 지진

요약 2010년 9월 초부터 2011년 2월 하순까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그 근교 및 캔터베리 평원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한 지진.
캔터베리 지진이라고도 함.

이때 발생한 지진들 가운데 가장 심했던 것은 2010년 9월 4일에 발생한 강도 7.0~7.1의 지진과 2011년 2월 22일 발생한 강도 6.3의 파괴적 여진이었다.

다필드 지진이라고 알려진 최초의 지진은 2010년 9월 4일에 발생했다. 지진의 진앙지는 다필드 지역 근처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서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지진의 진원지는 지표면 아래 대략 10㎞ 지점이었다. 캔터베리 평원의 서쪽에서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적 주향이동단층을 따라 일어난 움직임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단층은 오스트레일리아와 태평양판 사이의 경계에서 남동쪽으로 약 80~9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수천 번에 이르는 소규모 여진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수차례에 걸친 여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2011년 2월 22일 오후 12시 51분에 발생했다. 주 지진과 대조적으로 이 지진의 진원은 상대적으로 얕은 히스코트 계곡의 표면 아래 불과 5㎞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 계곡은 뱅크스 반도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의 교외에 있다. 진원이 지표면에서 깊지 않고 크라이스트처치와도 가까워 도시와 근교 지역에서 큰 흔들림이 있었다. 또 지표면이 갈라지고, 토양이 액체상태로 변화되는 흙의 용해가 발생했다.

9월의 지진과 그에 이은 여진으로 약해져 있던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의 건물과 도로들이 2월 지진으로 심하게 파손, 붕괴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 도심은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어 시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2주 후에 1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수십 명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였다. 사망자 대부분은 구조물들이 붕괴되고 그 잔해가 도로에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자동차와 버스의 충돌에 의한 사고도 있었다.

2011년 2월 지진 당시 무너진 건물 전경

ⓒ Gabriel Goh/Flickr | CC BY

최악의 사고 가운데 하나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캔터베리 텔레비전 방송사 건물의 붕괴였다. 이 건물은 거의 전파되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진이 발생한 날에 구조된 사람들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생존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구조가 중단되었다. 또한 남아 있는 건물이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해칠 정도로 불안정하다는 우려 때문에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고 다음날 건물이 안정되자 구조활동이 재개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성공회 성당 및 로마 가톨릭 성당 모두 상당한 훼손을 입었다. 교회 관리자들은 로마 가톨릭 성당 건물이 수리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단했고, 성공회 성당의 첨탑은 붕괴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 주변에 있는 다른 도시들도 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지진의 진앙지 근처의 리틀턴 항구 역시 건물과 부두, 그리고 기반시설들에 광범위한 손상을 입었다. 벡슬리와 다른 교외 지역들은 상수도관이 파손되어 홍수를 겪었다. 상수도관에서 쏟아진 물이 빠진 후에도 지진으로 파손된 도로와 주택들은 밀려온 토사로 덮여 있었다. 급히 조직된 지역단체가 음식을 나눠주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가재도구들을 꺼내는 것을 도왔다. 2월 22일 이후에도 며칠 동안 이어진 여진은 그 지역 건물들의 붕괴를 계속 위협했고 여러 지역에서 주민들의 대피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지진 발생 당일 존 키 총리는 지진 지역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공표했다. 지진 지역 내에서의 정부 권한을 확대하여 구조활동과 복구 노력을 조율하는 데 힘썼다. 1,000여 명이 넘는 뉴질랜드 군인들이 투입되었고, 지진 발생 당시 연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있었던 100여 명의 싱가포르 군대가 이들을 도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일본·싱가포르·영국·미국 및 다른 국가들 또한 수백 명의 수색 및 구조대원들을 파견했다. 지진 발생 후 일주일 동안 대원들은 70여 명의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하지만 구조활동은 여진에 의한 잠재적 위험 때문에 때때로 중단되었다. 붕괴 잔해물의 제거와 공식적인 피해 추정이 계속되었다. 도심 비즈니스 구역에 있는 수백 개의 건물과 1만여 채의 가옥들은 복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고, 철거되어야 할 것으로 진단되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에 도시 자체를 포기해야만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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