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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8. 1. 4,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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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6·25전쟁 때 가족을 모두 잃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틈틈이 기타를 치며 음악 공부를 했다. 1958년 미8군 무대를 통해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명곡을 발표하며 한국적인 록 음악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프로듀서로서도 자질을 발휘해 펄시스터즈를 비롯해 김추자와 박인수, 장현 등을 발굴하며 스타 제조기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는 밴드 더 맨을 결성해 1972년 한국 록 음악사상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강산〉이란 대곡을 발표했고, 이후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밴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5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로 컴백했으나 군사정권의 한계 때문에 성공은 제약적이었다. 2006년 은퇴 공연을 갖고 45년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며 한국 록 음악계의 전설로 남았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서울에서 태어난 신중현은 아버지를 따라 만주벌판을 떠돌았고, 귀국해서는 6·25전쟁 동안 가족을 모두 잃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기타를 쳤으며, 1958년 미8군 무대에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신중현은 한국적인 록 음악을 제시했다.
1964년 그는 자신의 첫 앨범이자 한국 록 음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밴드 애드 포(Add 4)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빗속의 여인〉을 담고 있는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록 밴드로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신중현은 1968년 자매 듀오 펄시스터즈의 데뷔 음반을 제작하면서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때 발표한 〈님아〉, 〈커피 한 잔〉, 〈떠나야 할 그 사람〉은 한국에서 히트한 거의 최초의 로큰롤과 리듬 앤드 블루스 곡이 되었다.
신중현은 뒤이어 김추자와 박인수, 장현 등을 발굴하면서 스타 제조기로서 명성을 쌓았다. 1968~73년 발표했던, 박인수가 부른 〈봄비〉(1969),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1970)와 〈거짓말이야〉(1971), 장현의 〈미련〉(1972), 김정미의 〈봄〉(1972) 같은 노래들은 큰 성공을 했다. 신중현은 밴드 더 맨(The men)을 결성해 1972년 한국 록 음악사상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강산〉이란 대곡을 발표했고, 이후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밴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4년 발표한 앨범에는 〈미인〉, 〈떠오르는 태양〉 등 총 10곡이 담겨 있는데, 이 음반은 록 밴드로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최초의 음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5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로 컴백해 신중현과 뮤직파워, 세 나그네 같은 후속 밴드를 결성했지만 군사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 음악비평계는 그의 음악사적 의미를 재조명 했으며, 봄여름가을겨울·강산에·윤도현·한영애를 위시한 후배 뮤지션들은 헌정 앨범 〈A Tribute To 신중현〉(1997)을 발표했다.
2006년 신중현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 공연을 가졌다. 인천에서 시작한 그의 은퇴 공연은 전국을 돌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45년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했고, 그는 한국 록 음악계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밖의 앨범으로는 〈무위자연〉(1994)·〈김삿갓〉(1997)·〈Body & Feel〉(2002)·〈도시학〉(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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