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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스콧은 역사소설의 창시자이자 가장 위대한 역사소설가로 꼽힌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나이든 친척들이 들려주는 스코틀랜드 변경지방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역사·극작품·옛날이야기·로맨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으며, 기억력이 뛰어나 시를 암송하여 방문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웃 지방을 답사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고, 스코틀랜드 선조들의 역사적인 투쟁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에든버러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받았고, 켈소에서 잠깐 그래머 스쿨을 다녔다. 1786년에 아버지 밑에서 법률서류 작성 일을 배웠으나 월터 스콧의 넘쳐 흐르는 젊은 혈기는 사회활동과 이탈리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로 된 잡다한 글을 읽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법률공부와 개업활동은 지리멸렬했다. 일찍이 실연의 깊은 상처를 받은 뒤 1797년 12월에 프랑스 왕가 출신인 샬럿 카펜터와 결혼하여 1826년 그녀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1790년대 중반에 월터 스콧은 독일 낭만주의, 고딕 소설, 스코틀랜드 변경의 발라드에 관심을 가졌다. 첫 출판작 〈추적, 윌리엄과 헬렌 The Chase, and William and Helen〉(1796)은 독일 낭만주의 발라드 작가 G.A. 뷔르거가 쓴 발라드 2편을 번역한 것이다.

1799년에는 괴테의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을 어설프게 번역한 작품을 발표했다. 변경지방의 발라드에 대한 관심은 마침내 〈스코틀랜드 변경지방의 민요 Minstrelsy of the Scottish Border〉(3권, 1802~03)로 결실을 맺었다. 구전 과정에서 손상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월터 스콧의 노력은 이따금 기교적인 낭만주의 취향의 힘찬 시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 스콧의 이름은 많은 대중에게 알려졌으며, 뒤이어 본격적인 이야기체 시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 The Lay of the Last Minstrel〉(1805)로 첫 성공을 거두었다.

중판을 거듭한 이 시의 명쾌하고 활기찬 서술, 스코틀랜드의 토속적인 색채, 연민을 자아내는 고결한 힘, 생생한 풍경묘사는 그뒤 〈마미온 Marmion〉(1808), 최대의 성공작 〈호수의 연인 The Lady of the Lake〉(1810)·〈로커비 Rokeby〉(1813)·〈섬의 영주 The Lord of the Isles〉(1815) 같은 시적 로맨스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월터 스콧은 이 무렵 문학과 사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1808년 존 드라이든의 작품을 18권으로 편집하여 출판한 뒤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집 19권(1814)과 다른 작품들도 편집했다. 그러나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후 여러 차례 진로를 바꾸었다. 1799년에 다행히 셀커크 주의 판사대리로 임명되어(이 직책은 평생 계속됨) 수입이 늘었고, 1806년에는 에든버러에 있는 항소법원의 서기가 되어 수입이 더 늘어났다. 한편 이 무렵에 제임스 밸런타인과 무책임한 형 존이 소유하고 있던 인쇄소(뒤에 출판사가 됨)의 동업자가 되었는데, 1813년 이 회사가 파산 직전에 이르자 월터 스콧이 그 위기를 막았다.

이때부터 월터 스콧은 자신이 떠맡은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스콧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다른 이유는 애버츠퍼드에 희귀한 골동품을 엄청나게 갖춘 대저택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1813년경 월터 스콧은 이야기체 시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고, 깊이와 힘을 가진 바이런의 이야기 시가 이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던 그를 위협했다. 1813년에 스콧은 1805년에 쓰기 시작했던 소설의 미완성본을 발견하고 빠른 속도로 마무리해 1814년 초여름에 거의 완성했는데, 이 소설이 〈웨이벌리 Waverley〉이다.

이 소설처럼 독창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즉각 인정받아 널리 읽히는 운좋은 경우는 드물다. 〈웨이벌리〉는 1745년의 자코뱅 반란에 대한 이야기로서, 사라져버린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의 생활상과 충성심을 새롭게 해석하여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이 책은 1827년까지 쓴 많은 소설들처럼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웨이벌리〉를 비롯한 소설에서 월터 스콧의 특별한 문학적 재능이 그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스콧은 흥미진진한 격동기의 역사적 배경 속에 활기차고 다양한 수많은 인물들을 설정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

또한 표현이 풍부한 스코틀랜드 방언과 기사나 귀족의 세련되고 공손한 어법에 모두 능통했다. 스코틀랜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생활양식과 관습을 예리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거지와 시골사람에서 중류층·전문직업인·지주귀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통찰력 있게 스코틀랜드 사회를 묘사하여 사회사가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월터 스콧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임으로써 왕족에게만 집중했던 이전의 역사소설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사건을 생생하게 그리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고지사람들 특유의 성격과 17, 18세기 스코틀랜드를 뒤흔든 격렬한 정치적·종교적 갈등을 모두 실감나게 표현했다. 마침내 월터 스콧은 힘이 있으면서도 단정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며 묘사가 명징한, 풍부하고 화려하며 자연스러운 문체의 대가가 되었다.

〈웨이벌리〉에 뒤이어 월터 스콧은 오늘날 '웨이벌리' 소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시리즈를 발표했다.

〈가이 매너링 Guy Mannering〉(1815)·〈골동품 수집가 The Antiquary〉(1816)로 1740년대부터 1800년 직후까지를 다룬 3부작을 완성했다. 4편의 연작소설 가운데 〈나의 지주 이야기 Tales of My Landlord〉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첫번째 시리즈는 〈검은 난쟁이 The Black Dwarf〉와 걸작 〈옛 사람들 Old Mortality〉(1816)로 이루어져 있다. 그뒤에 걸작 〈로브로이 Rob Roy〉(1818)·〈미들로디언의 중심부 The Heart of Midlothian〉(1818)·〈래머무어의 신부 The Bride of Lammermoor〉(1819)·〈몬트로즈의 전설 A Legend of Montrose〉(1819)을 차례로 발표했다.

이러한 스코틀랜드 역사소설을 쓴 뒤 월터 스콧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국과 다른 곳의 역사에서 주제를 택했다. 그결과 12세기 영국이 배경인 〈아이반호 Ivanhoe〉(1819)를 썼는데,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스콧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수도원 The Monastery〉·〈대수도원장 The Abbot〉은 1820년, 〈해적 The Pirate〉·〈나이즐의 행운 The Fortunes of Nigel〉은 1822년에 나왔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이 배경인 〈케닐워스 Kenilworth〉(1821)와 15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큰 인기를 얻은 〈켄틴 더워드 Quentin Durward〉(1823)도 걸작으로 꼽힌다. 후기소설 가운데 최고작은 〈붉은 장갑 Redgauntlet〉(1824)과 십자군 원정 때의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한 〈부적 The Talisman〉(1825)이다.

월터 스콧은 조국 스코틀랜드의 가까운 과거를 다룰 때는 허구적인 형식을 취하여 스코틀랜드에 대한 자신의 애매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합병으로 인한 상업의 발전과 근대화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성을 잃고 민족의식과 전통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웨이벌리' 시리즈에 속하는 소설들은 스코틀랜드의 자코뱅파(망명한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2세 지지파)가 이룩한 옛날의 영웅적인 전통이 근대사회에서는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실제로 스콧 소설의 주인공은 무장을 갖춘 투사적인 기사가 아니라, 영웅적인 과거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것과 정서적인 유대감도 갖지 않은 채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변호사·농부·상인과 소박한 사람들이다.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과거에 대해 낭만적인 애착과 관심을 지닌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미래가 영국의 상업적인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설가였다. 스콧은 문명을 환영했지만,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도 열망했다. 바로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스콧의 훌륭한 소설에는 활력과 긴장과 복합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 이무렵에 벌어들인 막대한 돈은 도리어 스콧의 파산을 재촉했다.

토지를 소유하여 인심 좋은 지주 행세를 하고 싶어했던 월터 스콧은 수입을 미리 계산해서 출판업자 아치벌드 컨스터블과 대리인 밸런타인 형제와 함께 극도로 복잡한 계약을 맺었는데, 결국 이것이 재앙을 몰고 왔다. 스콧은 그들과 함께 아직 집필중인 작품을 담보로 대출받은 어음으로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이 어음은 일정한 날짜에 모두 갚겠다는 서면약속으로서 당시 널리 인정되던 관행이었으나, 1825년의 심각한 경제침체 때문에 채권자들은 즉시 현금으로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컨스터블이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자 월터 스콧과 밸런타인 형제도 연쇄적으로 파산했다. 스콧은 그들의 빚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약 12만 파운드에 달하는 빚을 갚는 데 여생을 바쳤다. 스콧이 성실하게 일해서 모든 빚을 갚은 데 대해 모든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스콧은 후기작품을 무리하게 서둘러서 쓴 데다 강박관념까지 가졌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 〈붉은 장갑〉에서 자코뱅 시대 말기를 훌륭하게 재현한 뒤로는 초기작품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여전히 인기가 있었고, 또 여전히 빠르고 쉽게 글을 썼다. 이무렵 스콧의 채권자들은 그에게 독촉을 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는 영문학의 대가로 존경받았다.

1827년에 '웨이벌리' 시리즈의 작자가 월터 스콧이라는 사실이 마침내 공공연하게 밝혀졌다. 1831년 스콧은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유럽을 여행하다 요양차 들른 나폴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1832년에 집으로 돌아와 죽었다.

월터 스콧은 당시의 이질적인 소설기법들을 한데 합쳐 스코틀랜드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옛것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전지적인 서술기법, 지방어, 지방색을 가진 배경, 정교한 인물묘사, 사실적으로 다루어진 낭만적 주제는 모두 스콧에 의해 새로운 문학형식인 역사소설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월터 스콧은 다른 유럽과 미국 소설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명성은 여전히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