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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유럽 유틀란트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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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5,925,623명 (2024년 추계) |
수도 | 코펜하겐 |
면적 | 43,098㎢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덴마크 왕국 (Kingdom of Denmark) |
기후 | 겨울에는 온난하고 여름에는 서늘해 기온 연교차가 적음 |
민족 구성 | 스칸디나비아인, 페로스인, 이뉴잇족 |
언어 | 덴마크어 |
정부/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 단원제 |
종교 | 복음루터교(95%), 로마가톨릭&그리스도교(3%), 이슬람교 |
화폐 | 덴마크 크로네 (DKK; plural kroner) 환율계산기 |
국화 | 붉은클로버 |
대륙 | 유럽 |
국가번호 | 45 |
GDP | USD 369,760,000,000 |
전압 | 220V / 50Hz |
도메인 | .dk |
요약 유럽의 국가. 유틀란트 반도와 동쪽 해상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고, 자치령으로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가 있다.국민 대다수는 덴마크인이고, 공용어는 덴마크어이다. 국교는 복음주의 루터교이며, 화폐단위는 덴마크크로네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기반을 둔 혼합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생활수준이 높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으며, 입헌군주국가로 국가원수는 덴마크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면적 43,098㎢, 인구 5,925,623(2024 추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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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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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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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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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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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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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덴마크와 한국과의 관계
- ┗ 외교
- ┗ 광복 이전
- ┗ 광복 이후
- ┗ 경제·통상·주요 협정
- ┗ 문화교류·교민 현황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동쪽의 보른홀름 섬을 포함하면 동서로 275km, 남북으로 335km 뻗어 있다.
이 나라는 스칸디나비아와 중앙유럽을 지리적·문화적·상업적으로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 북해와 발틱 해 사이에 위치한 덴마크는 유틀란트 반도와 반도 동쪽에 있는 군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2개의 섬, 셸란 섬(질랜드 섬)과 퓐 섬(핀 섬)이 덴마크 전체 육지 면적의 1/4을 차지한다. 육지 쪽으로는 남쪽에 있는 독일과 유일하게 접하는데, 그 접경 거리는 65km에 불과하다.
483개의 섬을 포함해 7,400km에 이르는 해안선은 서쪽으로 북해, 북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발트 해와 카테가트 해협을 따라 뻗어 있다. 덴마크 영토에는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들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가 포함된다. 기후는 대개 온습하다.
국민의 대다수는 덴마크인이고, 공용어는 덴마크어이다. 국교는 복음주의 루터교로, 거의 모든 국민이 믿고 있지만, 이스람교도도 있다. 화폐단위는 덴마크크로네(Danish Krone/DKK; plural kroner)이다.
덴마크의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기반을 둔 혼합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며, 생활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입헌군주제이다. 국가원수는 덴마크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BC 12000년 무렵 덴마크에 인류가 살고 있었다. 바이킹 시대에 데인족은 그들의 영토를 확장했고, 덴마크 왕국은 11세기까지 현재의 스웨덴, 잉글랜드, 노르웨이의 영역을 지배했다. 스칸디나비아는 1397~1523년에 덴마크의 지배 아래 통합되었고, 1523년에 스웨덴이 독립했다. 덴마크인들은 17세기에 스웨덴과 연이은 소모전을 벌이다가, 1660년 코펜하겐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간의 국경선이 정해졌다.
덴마크는 19세기와 20세기에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지역들을 얻었다가 잃었다. 1849~1915년에 3차례 헌법을 개정했고, 1940~45년에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다.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립 회원국 중의 하나가 된 덴마크는 1953년 현재의 헌법을 채택했다. 1973년 유럽 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EEC)의 회원국이 되었고, 1993년 유럽 연합(European Union/EU)의 회원국이 되었다.
21세기 초 이민자에 대한 덴마크의 조치는 국제적으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전에도 덴마크 한 일간지의 풍자만화에 대해 반이슬람적이라는 이유로 이슬람주의자들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연환경
덴마크 본토는 유틀란트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저지대로 고도가 평균 해발 30m 이하이며, 가장 높은 지점이 유틀란트 반도 중부에 있는 이딩 산인데 그 높이가 해발 173m에 불과하다.
북유럽의 빙하작용이 이곳의 경치를 특징짓는다. 보기 좋은 빙퇴석 지역이 북서해안에 있는 니숨 협만으로부터 동쪽의 비보르 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국토 끝까지 계속된다. 이 빙퇴석지대는 융빙수(融氷水)에 의해 덮인 모래와 자갈이 있는 서부 유틀란트 지역과 비옥한 롬질(質) 평야가 있는 동부 유틀란트 지역으로 국토를 양분한다. 가장 큰 2개의 섬인,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 섬과 핀 섬이 덴마크 전체 육지면적의 약 1/4을 차지한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구데노 강(158km)은 유틀란트 반도 중동부에서 발원하여 동부 해안에 있는 라네르스 협만에 흘러든다. 면적이 41㎢인 아레 호가 이 나라에 있는 많은 호수 가운데 가장 크다.
기후는 대체로 온습하며 연간강우량은 400~800㎜로 지역적인 차이가 있다. 연평균기온은 2월의 0℃에서 7월의 16℃의 분포를 보인다. 북해의 풍부한 석유, 천연 가스 지대에 대한 덴마크의 소유분은 영국이나 노르웨이의 소유분보다 적으나 국내수요의 약 절반을 충당한다. 대규모 석회석 매장지를 제외한 다른 광물자원은 거의 없다.
국민
현재 주민은 신석기시대에 혼합된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북유럽 인종의 특징이 지배적이다. 유틀란트 반도 남부에 정착하고 있는 독일 민족이 유일한 소수민족이다. 덴마크어는 게르만어군에 속하며,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에 가깝다. 국교는 루터교의 종파 중 하나인 덴마크 국민교회로, 3/4의 국민이 국교회에 등록되어 있다.
주로 노년인구의 증가로 사망률이 출생률을 초과하기 때문에 1981년 이후 인구는 감소했지만, 1990년대부터 미약하게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592만 5,623명 이며, 인구밀도는 138명/㎢이다. 평균수명은 남자 79세, 여자 83세로 세계 평균치에 비해 매우 높다. 전체 인구의 88%가 도시지역에 거주하며, 수도 코펜하겐에 전체 인구의 1/10 정도가 살며, 주요 인구밀집지역들인 유틀란트 반도의 올보르그·오르후스, 핀 섬의 오덴세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의 성장속도는 느리다.
경제
천연자원이 빈약한 데도 국민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생활을 즐긴다. 덴마크의 경제는 서비스업·제조업·금융업을 기초로 한 국영과 민영의 혼합 경제체제이다. 인구수보다 증가속도가 훨씬 빠른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다른 서구 선진국들과 비슷하다.
국토의 2/3 가량이 경작가능한 토지이다. 집약농업을 하며, 대부분의 토지는 협동조합에 속하는 소농들이 차지하고 있다. 농민은 전체 노동력의 대략 1/16이다. 보리를 비롯해 밀·평지·사탕수수·감자 등이 주요작물이다. 목초지가 국토의 6%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축으로는 돼지가 주종이고 그 다음으로는 육우와 젖소 순이다. 닭과 오리도 많이 기른다. 천연 낙엽수와 인공 침엽수·전나무가 울창한 삼림지역이 국토의 약 12%를 차지한다.
이 나라는 많은 섬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해안선이 유난히 길다. 해안이 대부분 피오르드 형태이므로 천연항이 많아 수산업, 해운업, 그리고 관련산업이 발달했다. 총어획량에서 덴마크의 수산업(주로 해양수산업)은 보통 세계 15위 안에 든다. 광물자원 채굴은 GNP의 1% 가량을 차지하나 고용비율은 1% 미만이다. 하지만 원유·석유제품과 석탄 수입은 덴마크 총수입의 약 1/5에 달한다.
제조업은 잘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여 노동자 5명 중 거의 1명꼴로 이 부문에 종사한다. 정유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생산품으로는 시멘트, 돼지고기, 미가공·반가공 강철제품, 가공식품, 화공약품, 종이 등이 있다. 전력은 거의 대부분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다. 매년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업도 중요한데, 관광객들은 대부분 코펜하겐과 그 부근에 있는 해안휴양지를 찾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한 공업화 계획으로 원자재와 에너지용 연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는데, 이는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한다. 1970년 북해에서 유전을 발견함으로써 에너지 수입비용을 조금 절감하게 되었다. 정부가 개발한 폭넓은 사회복지사업과 결부되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국가경제의 한 특징을 이룬다. 노동력의 1/4 이상이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한다. 노동조합은 합법적이고 단체활동의 조직과 참여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정부를 대신해 실업보험 사업을 관리하기도 한다. 세입은 주로 관세·국내물품세·소득세·재산세에서 발생한다. 세출은 주로 사회복지사업, 교육, 국방에 쓰이며 나머지는 경제개발에 사용된다.
덴마크 국영철도회사가 전국 철도의 4/5 이상을 소유·운영한다. 전국에 걸쳐 광범위한 도로와 고속도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도로는 포장되어 있다. 약 420km에 이르는 내륙수로가 있다. 덴마크 국영철도회사가 운영하는 연락선들이 덴마크 여러 섬들과 유틀란트 반도를 연결하고 있으며 독일·스웨덴·노르웨이에도 취항한다. 여러 훌륭한 항구들이 15개의 주요 선박회사들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준다.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약 10km 동남쪽에 있는 카스트로프에 국제공항이 있다.
수출품은 주로 식품과 산 동물이나 기계류·수송장비·가구를 포함한 여러 공산품들도 수출한다. 제품의 주요 수출대상국은 인접한 독일·스웨덴·영국이다. 같은 나라들에서 기계류·수송장비, 기본적인 공산품, 원유·석유제품 등 주요한 수입품을 들여온다.
정치와 사회
입헌군주국가로 왕은 형식적인 권한만 가진다.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상과 내각의 각료들을 임명하는 일이지만, 내각은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출되는 의원들로 구성되는 단원제 입법기관인 폴케팅에 대해 책임을 진다.
1953년 헌법에 따르면 수상은 언제든지 입법기관을 해산하고 새로 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 다당제이기 때문에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당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주로 노동자와 공무원을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이 이 나라 제일당의 지위를 누려왔다. 사법부의 최고 기관은 대법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갖고 있어, 모든 국민이 혜택을 입고 있으며 노인·불구자·임산부·사망자·환자들은 수당을 받는다. 생활수준이 높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보건상태가 우수하다. 7~16세의 어린이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학교는 대부분 공립이며 수업료가 없다. 1479년에 설립한 코펜하겐대학교를 포함하여 5개의 대학교가 있다. 신문들은 검열을 받지 않는다. 독립 공공기관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시청료를 받아 운영하는 덴마크라디오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운영한다.
문화
덴마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무용가·영상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덴마크 문학). 유명한 작가로는 노르웨이 태생의 루드비 홀베르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철학자 겸 신학자였던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로는 1917년의 헨리크 폰토피단과 1944년의 요한네스 V. 옌센이 있다. 덴마크 왕립 발레단은 19세기에 아우구스트 부르농빌이 안무를 맡음으로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754년에 세워진 왕립 덴마크 미술협회에서는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트센과 현대건축가 아른 야콥센을 배출했다.
역사
고고학상의 유물을 보면 이미 10만 년 전에 덴마크에서 인간이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석기시대(BC 10000~BC 1500)에 덴마크의 주민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상태에서 농사짓는 것과 같은 보다 정착적인 생활로 발전했다. 서력기원 초기 수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유적지들은 특히 로마의 멸망 이후 전쟁과 불안정한 상태가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고트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고트족의 한 역사가는 덴마크인들이 원래 스웨덴 지역에 살던 데인족들로 고트족 시대에 덴마크로 넘어와 정착했다고 주장했다. 샤를마뉴 제국의 북진정책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프랑크족의 북진은 9세기초에 저지되었으며, 811년에 체결된 협정으로 아이더 강이 덴마크와 남쪽 이웃 국가들 사이의 국경선이 되었다. 바이킹의 세력확대는 7세기에 시작되었으며, 기독교는 10세기에 들어왔다. 크누트 왕 시절에는 영국과 덴마크를 합친 제국이 건설되었고, 스웨덴의 여러 지역까지 차지한 이 제국은 1035년 크누트 왕이 죽을 때까지 존속했다.
덴마크 역사에 있어 중세시대는 귀족들과 자칭 왕들 간의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전부터 강구되었던 1년 단위의 의회제도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14, 15세기의 교역은 독일이 주축이 된 한자 동맹 때문에 쇠퇴했다. 노르웨이·스웨덴과의 동맹관계는 주로 세 나라 왕족 간의 결혼을 통해 1387년에 형성되어, 스웨덴이 이 동맹을 탈퇴한 1448년까지 계속되었다.
16세기에 내란이 일어나 루터파가 자리를 잡고 귀족들의 지위가 강화되었다. 17세기에는 덴마크인들이 발트 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여러 번 소모전을 일으켰다. 대부분 실패로 끝난 이 전쟁의 결과 코펜하겐 평화조약(1660)이 체결되었는데, 여기에서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간의 국경선이 정해졌다.
이러한 값비싼 전쟁의 결과 경제적 어려움이 따랐으나, 18세기에 식민지 시장에서의 교역확대로 경제발전을 약간 이룩했다. 1800년대 초기의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국고가 고갈됐고, 1814년에는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넘겨주었다. 186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프로이센에게 빼앗겼다. 1849~1915년에 3차례 헌법을 개정했고, 1920년 국민투표에 의해 슐레스비히 북부를 되찾았으며, 1940~45년에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다. 1945년에는 아이슬란드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1948년에는 1380년부터 덴마크의 영토였던 페로 제도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다. 그린란드는 1953년에 정식으로 덴마크에 편입되었다가 1979년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949)의 창립 회원국 중 하나이며, 1973년 유럽 경제공동체(EEC)의 회원국이 되었다.
덴마크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광복 이전
대한제국과 마지막으로 수호조약을 체결한 국가로서, 1902년 7월 대한제국 전권대신 유기환과 덴마크 전권대신 파블로우 사이에 〈한정수호통상조약 및 부속통상장정〉이 조인되었다. 이 무렵 덴마크 정부의 기술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가 가설되기도 했으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외교가 단절되었다.
광복 이후
양국은 1959년 3월 외교관계를 재수립하기로 하고 4월 1일 덴마크 주일공사 T.B. 닐슨을 겸임공사로, 전택보를 덴마크 명예영사로 각각 지명했다. 같은 해 5월 8일 주영대사가 덴마크 겸임공사로 임명되었으며, 1960년 10월 21일에는 대사급 수교가 이루어졌다. 1972년 4월에 덴마크 상주 한국대사관이, 1978년 6월 14일에는 O. 필립슨을 초대 주한상주대사로 하는 주한국상주 덴마크 대사관이 각각 개설되었다. 양국은 2011년 전략적 동반자관계와 녹색성장동맹을 체결하고 양국의 최고위 인사들 상호 방문과 협력분야 다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한편 덴마크는 북한과 1973년 3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북한은 주 덴마크 대사관을 개설했으나 1976년 10월에 북한 대사관 직원의 마약 및 술·담배 밀수 혐의를 들어 공관원 전원을 추방시켰으며, 이후 북한은 주 스웨덴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덴마크는 주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1983년 덴마크의 완구제조업체인 레고사(社)와 한국 우정해운이 합작해 레고코리아를 설립했고, 또 같은 해에 덴마크의 비엔더블유엔진회사가 현대중공업과, 다음해에는 쌍용중공업과 합작으로 조선 및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밖의 덴마크의 케이브이엠사와 한국의 코단주식회사가 기술협력으로 압축보도블럭을, 덴마크의 에프엘스미스사와 한국의 유니언시멘트사가 기술협력으로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농산물가공 분야에서도 여러 기술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덴마크는 한국의 중요한 무역상대국이다. 1999년 9.19억 달러이었던 총 교역액이 2021년에는 20억 달러의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의 2023년 기준 덴마크 수출액은 5억 5,476만 달러, 수입액은 8억 4,396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광물성 연료, 철도용 및 궤도용 외의 차량과 부속품, 철강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돼지고기, 의료용품, 원자로 및 보일러 등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코펜하겐무역관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5월에 협상 개시된 한국과 덴마크의 자유무역협정(FTA)(한국-EUFTA)은 총 8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1년 7월에 정식 발효되었다. 이 밖에도 상속 상호등록에 관한 협정(1961), 사증(비자)면제 협정과 개발차관 협정(1969), 국제운수소득상호면제 협정과 이중과세방지 협정(1977), 해운협정(1980), 상사중재협정(1982), 투자보장협정(1988), 항공협정(1995) 등이 체결되어 있고 2006년 11월에는 교육인적개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덴마크는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으며,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해 의료활동을 지원했다. 현재는 산업·사회·문화면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6·25전쟁중 스칸디나비안메디컬센터와 병원선 유틀란디아호에 근무했던 250여 명이 한정협회를 결성해 매년 한국문화 소개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특히 유틀란디아호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1981년 5월 유틀란디아동지회를 결성해 '한국영화의 밤'이라는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고아로 입양된 이들이 '한정우정의 모임'을 만들어 적극적 친선활동을 하고 있다. 1980년 5월에는 덴마크태권도협회가 조직되어, 그 산하에 많은 태권도 클럽을 두고 있다. 1975년 9월 코펜하겐대학에 한국학과가 신설되었으며, 코펜하겐에 있는 한 문법학교에서는 한국 지리·역사에 대한 강좌가 열리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왕립도서관의 동양학부(코펜하겐 소재)는 수천 권의 한국 장서와 많은 종류의 학술지를 구비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에는 다수의 한국 도자기·서화·민속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따금 왕립도서관과 국립박물관은 공동으로 한국문화전시회를 개최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틀란디아 병원선이 도착한(1952.2) 무렵 한정협회를 조직해 정기적으로 덴마크 사진전을 여는 등 친선사업을 펴왔다. 현재 이 협회는 덴마크를 다녀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그중 덴마크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1965년 2월 '정우회'를 창립해 친목학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펜하겐(1986년 4월 설립)과 율랜드(1989년 6월 설립)에 한글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1973년 10월에 창설된 한인회는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한국의 우수한 문화, 예술 소개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는데 기여하고 있고 양국의 이해와 친선을 증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덴마크에는 8,844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덴마크의 셀란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323명의 덴마크의 국적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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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덴마크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국가통계포털
- ・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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