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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국

다른 표기 언어 康潤國

요약 독립운동가.

마지막 항일의거로 꼽히는 '부민관 의거'의 주역이다. 독립운동을 하고자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일본강관주식회사의 부당한 차별대우에 항의하는 1,00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 파업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요코하마[橫濱] 헌병대에 검거되었다.

1944년 7월 귀국하여 1945년 5월 유만수(柳萬洙), 권준(權俊), 우동학(禹東學), 조문기(趙文紀)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조직했다. 당 조직 직후, 친일파의 거두였던 대의당 당수 박춘금(朴春琴)을 명월관(明月館)에서 폭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45년 7월 24일 다시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대의당 주최로 일본·조선·만주·중국 등의 친일파들이 일제에 충성을 다짐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들을 처단하기로 결의한다. 강윤국은 조문기·유만수 등과 함께 행사장에 2개의 폭탄을 터트려 대회를 무산시켰다. 거사 후 이들은 태극기를 펴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후 "일본은 망한다. 젊은이들이여 징병을 거부하자!"고 외쳤다. '부민관 의거'는 일제 말기 항일민족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5만 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으나, 강윤국은 경기도 화성에서 야학당을 근거지로 항일거사를 모의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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